생산성 연구소 18. 고립
인간에게 가해질 수 있는 가장 무서운 형벌은 바로 고립이다. 사회적인 고립은 두말할 것도 없다. 사회적 단절의 고통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진정으로 사회로부터 물리적으로 고립되고 싶은 인간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정신적인 고립을 택한다. 인간관계에 지치거나, 일상이 너무 바쁘거나, 상처 입었거나, 상처주었거나 하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그 고립 때문에 더 피폐해질 것이고, 그로인해 더 고립되는 악순환이 예정되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고립은 모든 것을 죽게 만든다. 고인 물은 썩고, 갇힌 동식물은 죽고, 뇌는 창의력을 잃어간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창의력이다. 무언가 창조하고 싶다면 고립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팬을 만드는 일, 글을 쓰거나 컨텐츠를 만드는 일, 창업을 하거나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일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창조를 의미한다.
간혹 창조를 위해 고립을 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러 작가들이 글을 쓰기 위해 폐관 수련에 들어간다는 건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장면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나는 그러한 수련이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엄밀히 말하면 그 과정은 창작이라기 보단 노동이다. 글을 쓰는 건 창의력이 아니라 엉덩이 싸움이다. 창의력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에 발휘되는 것,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면 창조를 하기 위해 고립되는 잘못된 선택을 한다.
창의력은 무의식적인 것이고, 의도하지 않은 것이며, 일상적인 것이다. 그러니까 노력한다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셈 솟는 게 아니고 긴 시간의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여러 작품을 감상해야 하고, 자신의 인사이트로 녹여내야 하며, 대화나 글로 발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고립은 이 과정에서 인풋을 없애겠다는 말이다. 고립의 제일 큰 문제는 자기 안에 갇힌다는 것이다. 아무리 독창적인 사람도 고립되어서는 창의적인 결과를 만들기 어렵다. 인풋이 없으면 아웃풋이 나올 수 없다.
그렇다고 고립되지 않기 위해 모임을 참가하거나 친구들을 만나라는 건 아니다. 내 생각엔 꼭 인간과 마주할 필요는 없다. 최근 나는 아이디어가 고갈되어 있었다. 인사이트를 얻는 채널이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랜만에 도서관에 가서 책을 둘러보았다. 몇 분 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내가 만약 밖에 나가기가 귀찮아 집에서만 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고립되지 않게 해주는 최소한의 방어선은 여자친구와 슬빈이다. 여자친구와는 워낙 자주 이야기하고 만난다. 그녀는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무수히 많은 영감을 준다. 슬빈이와는 해사를 나온 후로 꾸준히 글을 공유하고 있다. 글 공유가 좋은 점이 너무 많은데 하나만 콕 집어 뭐가 좋다라고 얘기하기가 애매했다. 그러다 오늘 든 생각은 “존재 자체”다. 그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만으로 효과가 있다.
나는 대화를 하면서 아이디어를 찾는 편인데 매번 그럴 수 없으니 혼잣말을 하거나 셀프 영상을 찍으려고도 해봤다. 하지만 상대가 없으면 도무지 말이 나오지 않는다. 슬빈이와의 연결은 마치 항상 통화 연결 중인 느낌이다.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만으로도 엄청난 동기부여와 영감을 받는다. 거기에 내가 글을 쓰면서 새롭게 떠올리는 것들, 슬빈이의 글을 보면서 얻는 인사이트까지 합치면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하다. 최근엔 슬빈이가 쓴 재미에 관한 글이 내게 큰 영향을 주었다. 다시 한 번 “역시 글 공유를 하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를 고립시키게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식상함 때문이다. 어찌됐든 귀한 인사이트는 얻기 어렵다. 대부분의 정보나 조언들은 이미 들어본 것들이라 식상함을 느끼기 쉽다. 좋은 것들로만 채우려고 욕심을 부리니 대다수를 필터링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다보면 이 과정에 지쳐 인풋을 얻으려는 동기 자체를 잃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1급수로 채워진 웅덩이여도 고립되면 썩는다. 웅덩이가 썩지 않으려면 계속 새로운 물이 들어와야 한다. 2급수 3급수 물이 들어오는 게 싫어도 고립되어 썩는 것보단 낫다.
그러므로 새로운 인간, 새로운 환경, 새로운 경험, 새로운 정보를 끊임없이 탐구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자극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고, 타인이나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채널”을 구축하는 게 좋다. 연애가 그렇고, 글 공유가 그렇다. 모임이 될 수도 있고, 도서관 같이 공공장소일 수 있다. 새로 나온 영화를 챙겨보거나 안 읽어본 장르의 글을 읽을 수도 있다. 새로운 핫플에 놀러가고, 축제에 참가하거나, 가족 여행을 계획하는 것도 내가 고립되지 않게 도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