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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가치 있는가?

작성 2024.01.26분류 글주제 사회와 시장

우리말로 똑같이 “섬유”라 번역되는 Textile과 Fiber의 속 뜻은 약간 다르다. Textile은 동식물이 만들어낸 실을 가로, 세로로 엮어서 짠 섬유이며 대표적으로 모직이 있다. 반면 Fiber는 동식물에 포함되어 있는 섬유질을 뽑아낸 것으로 식물을 빻아 얇게 편 것이 바로 Fiber에 속하는 종이이다. 제조방식에도 알 수 있듯이 Textile은 동식물이 만들어낸 실을 이용한 것이기 때문에 한정적이고 값도 비싸다. 반면 Fiber는 동식물에 포함된 섬유질을 이용하기 때문에 훨씬 싸고 대량으로 생산 가능하다.

질적인 차이도 극명하다. Textile로 만들어낸 제품들은 단단하고, 빨아서 재사용이 가능하다. 반면 Fiber로 만든 종이 같은 것들은 쉽게 찢어지고 한 번 쓰면 재사용이 어렵다. 고급 음식점에는 Textile로 된 고급 냅킨이 한 개 있고, 일반 식당에는 Fiber로 된 종이 냅킨이 여러장 구비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가치의 기준이 무엇이냐”의 관점에서 생각했을 때이다. 인간에겐 “인식의 공백”이란 현상이 있다. 지금 당장 경험하지 않은 것들을 감각적으로 덜 인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따듯한 곳에 있는 사람은 추운 외부의 날씨를 과소평가한다. 이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 중 하나는 “지속 시간 무시” 이다. 인간은 어떤 것이 주는 지속적인 가치보단 즉각적이고 단발적인 쾌락적 가치를 중요시한다. 예를들면 한 번 사용으로 100의 가치를 주는 제품과 10년간 지속적으로 10의 가치를 주는 제품 중 전자를 더 가치있게 평가한다.

우리 삶에 더 지속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당연 Fiber다. Fiber로 휴지를 만들고, 종이를 만들며 그 위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우린 Textile없이 살 수 있지만 Fiber없이는 살 수 없다. 웃긴 점은 Fiber가 지속적으로 가치를 줄 수 있는 이유는 Fiber가 싸기 때문이다. 즉, 인간이 매긴 “가격”이라는 가치가 해당 물건이 주는 “가치”와 항상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월급을 끌어모아 1000만원짜리 코트를 샀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그 코트가 너무 비싸고 소중하기에 신줏단지처럼 모셔 놓고 중요한 날에만 입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평소에는 10만원 짜리 코트를 입는다. 결국 1000만원짜리 코트는 1년에 1~2번 입을까 싶다. 나에게 더 가치있는 건 매일 입는 10만원 짜리 코트인가 아님 옷장 속에 있는 1000만원 짜리 코트인가?

나는 우리의 가치 체계 자체에 도전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 사회가 가치있게 여기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학 이론에서 정의하는 합리적 인간 “이콘”이 지배하는 “시장의 원리”가 정말 합리적으로 돌아가는가 하는 것이다. 시장 원리의 근본은 수요와 공급이다. 그런데 그 수요와 공급을 담당하는 건 바로 인간이다. 인간은 때론 감정적이고 충동적으로 행동하며, 자신의 행동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내가 이토록 강조해서 이야기 하는 이유는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인간은 의식적 노력 없이는 결국 자기 근처에서 지속적으로 행복을 더해주는 것들의 가치를 평가절하 하며, 진정으로 가치있게 여겨야 할 일상적인 것들 (좋은 날씨, 사랑하는 사람들, 일상적인 대화, 소박한 식사 등)을 등한시하게 된다는 점 때문이다.

남들이, 사회가, 여론이 가치 있다고 말하는 것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마라. 무엇이 진정으로 내게 가치를 주는 것인지 스스로 정의해야 한다. 다수의 의견이 항상 옳은 건 아니라고 믿으면서 어째서 시장 원리는 그토록 맹신하는가?

(또 약간 변주를 주어 다르게 생각해보자. 창의력이 가치 있는 것들을 생산해낼 수 있다고 가정하자. 이 때 창의력은 다작의 결과다. 다작을 하려면 쉽게 버리고 갈아 끼울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창의력을 위해 우리가 가까이 해야 할 건 조심조심 다뤄야 하는 Textile이 아니라 쉽게 쉽게 여러 번 시도할 수 있는 Fiber다. 즉, 폭발력의 재료는 값 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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