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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신도와 애매한 유신론

작성 2024.01.26분류 글주제 예술과 철학

2021년 겨울, 나는 신의 존재를 느꼈다. 증명할 수 없으나 그 순간 온 세포가 신이 있음을 실감했다. 신은 나에게 평화를 주고 갔고 나는 평화를 얻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상태에서 트랜스 상태에 빠진 것일 수도 있지만 내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나는 신이 있음을 믿게 되었다. 그렇다. 내게 신은 “믿음”의 형상이다. 나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종교적 신을 믿는 건 아니었다. 슬빈이와 이 이야기를 나눴고 그날 내가 믿게 된 신을 “닛”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신은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을 수 있는가?”의 문제다. 인간에게 누구나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의 옳고 그름보다는 믿음이 존재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나 무언가를 믿는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대개 그 믿음은 “믿을 수 있는 것” “믿어 지는 것”을 뜻한다.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건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믿을 수 없는 것 (그러니까 존재가 의심되는 것, 증명하지 못하는 것, 보지 못한 것 등)은 그보다 훨씬 포괄적인 무언가를 담고 있다.

우리가 타인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뭘까? 바로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믿어지지 않으니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 의심하는 것이다. 믿지 않으니 그런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 그러니까 믿음은 나의 경계를 넘어서 나와 타인 그리고 세상의 일체감을 실감하는 것이다. 수많은 현인들이 이에 관해 이야기했다. “신은 네 안에 있다.” “모든 삼라만상은 내면에 있다.” “나 자신을 알라.” 등등


세상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다.

  1. 광적인 무신론자
  2. 광적인 유신론자
  3. 애매한 유신론자

[광적인 유신론자]

흔히 알고 있는 광신도다. 이들은 자신이 믿는 것에 지나치게 심취해 있다. 종교에 미친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이웃을 이롭게 하라는 말의 의미를 오도해 세상을 더 어지럽게 만든다. 종교 뿐만 아니다. 어떤 이들은 도박에 미친다. 어떤 이들은 돈에 미쳐있다. 오직 돈만이 중요하고, 돈 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허구를 믿는 능력 때문에 인류가 발전했듯이, 인간은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개념을 마구잡이로 생산할 수 있다. 사랑, 마약, 회사, 가족, 자유 등등.

이들의 문제는 자신이 믿는 것의 가치를 지나치게 숭배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이 믿는 것들이 가치가 전혀 없다는 건 아니다. 다만 그 믿음에 집착하고 중독되어 진정으로 이로운 것이 무엇인지 보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건 광적인 유신론자는 소수인 데다 그 폐단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며,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있다. 즉, 구제책이 많다는 뜻이다.

[광적인 무신론자]

현대사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광적인 무신론자는 사실 광적인 유신론자와 다를 바 없다. 역설적이게도 각 극단은 서로 맞닿아 있다. 진리의 반대도 진리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앞서 말했듯이 믿음이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이들은 자신이 무언가를 믿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뿐이다. 이들은 자기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는 냉소적인 우월감을 표출하고 싶어한다.

단적인 예로 과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현상이다. 어떤 이들은 종교적 신을 극단적으로 믿지 않는다. 그 이유는 신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신을 강력하게 부정하는 모습은 내가 보기엔 광신도가 강력하게 신을 주장하는 모습과 비슷해 보인다. 이들은 자신이 과학을 광적으로 믿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세상에 광적인 무신론자는 없다. 이들은 전부 광적인 유신론자에 포함되어야 한다. 즉 무언가를 강하게 믿지 않는 건, 그것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강하게 믿는 것이다. 그래서 한 발 물러나서 이들을 바라보면 참으로 바보같다. 마치 자기는 절대 구덩이에 빠지지 않을거라 말하며 이미 구덩이에 들어가 있는 사람을 보는 것 같다.

광적인 무신론자는 믿을 수 없는 것은 모두 틀렸으며,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오직 자신의 머리와 지식, 경험으로 이해된 것들만 옳다고 여긴다. 나는 악보다 위선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광적인 유신론이 악이라면 광적인 무신론은 위선이다. 제일 큰 문제는 이들이 은밀하고 모호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그리고 본인 자신도 이것이 문제라고 인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절대 다수인 광적인 무신론자들의 폭력적이고 배타적인 사상은 이해와 관용의 크나큰 적이다.

정리하자면 사람들은 무언가를 강하게 믿고 있거나, 약하게 믿고 있는 상태에 있다. 한 가지를 강하게 믿는다고 다른 모든 것들을 강하게 믿는 것은 아니다. 이런 성향은 상황과 분야에 따라 같은 사람이라도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나는 마지막 종류의 인간인 애매한 유신론자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애매한 유신론자]

한 기자가 달라이 라마에게 질문했다. “만약 과학이 발전해서 신이 없다는 명백한 증거를 갖고 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달라이 라마가 대답했다. “저는 그 근거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진심으로 이해하려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근거가 합당하다고 생각하면 제 신념을 바꿀 것입니다.” 그리고 달라이 라마는 다시 물었다. “만약 어떤 영적인 것이 당신의 과학적 신념을 부정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달라이 라마는 위대한 종교 지도자이지만 애매한 유신론자다. 그의 믿음은 누구보다 가볍다. 그는 공자가 말한 “無可無不可”를 몸소 보여준다. 절대로 가능한 것도 절대로 불가능한 것도 없다. 틱쾅둑 스님이 분신자살을 하기 전까지 인간이 죽음의 공포와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란 걸 누가 믿을 수 있었겠는가? 우리가 믿을 수 없다고 하여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믿음은 태산처럼 굳건하되 언제라도 자리를 옮길 수 있도록 가벼워야 한다. 노자의 도덕경을 비롯한 동양 철학은 이 정신을 아주 잘 담고 있다. 인간은 항상 스스로가 옳다고 믿으면서도, 언제나 자신이 틀렸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해야 하고, 이것은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 애매한 유신론자는 이것을 행한다. 따라서 세상에 애매한 유신론자가 믿지 못할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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