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적 사고의 한계
최근에 나는 행동경제학의 시조인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을 읽었다. 전제는 간단하다. 경제학에선 그 주체가 합리적 인간인 “이콘”인데, 행동경제학에서 불완전한 “인간”이 주체이다. 여기에서 인간은 여러 오류와 어림직작 그리고 편향에 의해서 자신의 기호를 바꾸고, 일관성 없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러한 인간의 심리를 경제학과 연관지은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왠지 모르게 허무해진다. 이 책은 인간이 어떤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며, 통계를 통해 어떤 선택이 합리적인지 증명한다. 나아가 알고리즘이나 통계는 언제나 인간의 임상적 판단이나 직관보다 우월했다는 연구결과도 소개한다. 마치 AI가 그린 그림을 보았을 때 화가의 기분이 이런 걸까 싶었다. 인간적인 걸 배제하고 수학과 확률로만 판단했을 때, 그러니까 비인간적으로 행동했을 때 우리는 더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이 말이 무슨 뜻이냐면 현명한 선택이라 함은 확률적으로 가능성이 높은 쪽을 택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마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특수한 기술을 통해 수학과 통계로 미래를 예측하는 사회가 생각났다. 현명하게 선택하려면 통계적으로 가능성이 높은 것을 택해야 한다. 반대로 내가 하고자 하는 행동이 통계적으로 현명하지 않다면 해선 안 된다. 나는 이것이 인간을 더 효율적인 매커니즘을 따라서 정해진 대로만 행동하는 기계부품으로 만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정확히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막연한 비인간적인 무언가에 불쾌함을 느꼈다.
그리고 나아가 내가 하려는 것들, 나의 선택들, 나의 주관, 나라는 자아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헷갈렸다. 결국 수학과 통계로 그러한 인간적인 것들을 대신할 수 있고, 더욱이 그것들이 더 “합리적”인 거라면 말이다. 제일 큰 문제는 확신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인간은 희박한 가능성을 과대평가하고, 그것이 자기 일이라면 더 크게 생각한다. 그러니까 남들은 다 실패했어도 나는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는 뜻이다. 통계적으로 생각해보면 그 선택은 합리적이지 못하고 나는 다른 선택을 해야 현명한 것이다.
아직 명확한 해답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철학은 삶을 더 희망적으로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나는 “인간의 수학”을 맹신하지 않는다. 우리의 삶은 아무런 변수가 없이 완전무결한 삶이 아니다. 책의 결말에도 나왔지만 인간은 이러한 오류와 편향을 통해 발전해왔다. 만약 모두가 합리적인 인간이었다면 누구도 주식을 통해 돈을 벌 수 없을 것이다. 결국 통계라는 것은 도구일 뿐이다.
만약 그런 통계적 선택이 대세가 되고, 우리 모두가 더 “합리적”으로 변했다고 해보자. 그렇게되면 성공 확률이 낮은 것들은 피하고, 가능성이 높은 것들을 시도할 것이다. 아무도 시도 하지 않는 것의 성공 확률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가치가 있는 건 어렵다는 듯이다. 어렵다는 건 당연히 낮은 성공 확률이다. 즉, 누군가는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이다. 만약 로또의 당첨 확률이 낮아 아무도 로또를 사지 않는다면 로또 자체가 의미 없어진다. 하지 않으면 0%지만 일단 시도 하면 1%라도 있다.
통계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더 나은 쪽을 선택하게 하는 여러 기준 중 하나다. 통계를 잘 알면 분명 더 나은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직관이나 임상적 경험이 더 중요한 직업들도 있었다.극단적 사고에 빠지지 말고, 도구에게 잡아먹히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