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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삶

작성 2024.01.25분류 글주제 인간과 삶

나는 영화에서 인생을 배웠다. 나는 원채 남들과 어울리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주로 집에 혼자 있길 좋아했다. 나는 전혀 심심하지 않았다. TV와 컴퓨터가 있기에 심심할 틈이 없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영화를 무척 좋아했다.

영화에 나오는 등장 인물들은 화려하고, 잘생겼으며, 불우한 환경이더라도 역경을 딛고 극복해서 보란듯이 성공한다. 그들은 낭만적이고 우아했으며, 절대 흐트러지지 않았다. 아니 흐트러져도 멋있었다. 한 마디로 “그들은 영화 같은 삶을 살았다.”

지금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비포 선라이즈”는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유럽 횡단 열차에서 우연히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다. 에단은 줄리에게 같이 내릴 것을 권유했고, 그녀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들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하룻밤을 같이 보내며 사랑에 빠졌고 6개월 후 이곳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내게 사랑이란 빈에서 꿈 같은 하룻밤이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고, 사랑이란 이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이런 사랑을 꿈꾸고 상상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난 실제 사랑을 하게 됐다. 결과는 어땠을까? 예상과 다르게 정말 영화같은 사랑을 했다. 뜨겁게 불타올랐고, 영화같은 낮과 밤을 보냈다. 우리는 서로에게 미쳤고, 때때론 정말 미친듯이 사랑을 나눴다. 나는 꿈에 그리던 영화 같은 삶을 살았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나는 평생 영화처럼 살 수는 없었다. 왜냐면 낭만적인 사랑 이후에는 평범한 일상이 반드시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걸 인정할 수 없었다. 나는 일상에 권태를 느꼈다. “나의 삶은 영화 같아야 하는데 난 지금 뭘 하는 거지?” 나는 현실에 불만족 했고 다른 사람들의 영화 같은 스토리에 매료되어 당장이라도 둥지를 떠나고 싶었다. “나도 한 때 낭만적인 사람이었는데.”

영화를 보면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은 그 낭만을 찾기 위해 다시 한 번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기가막히게 우연이 겹쳐 영화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좌충우돌 사건을 겪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다시 한 번 삶과 사랑에 빠진다. 박수 갈채. 내려오는 커튼. 그리고 FIN.

나는 깨달았다. “삶은 영화가 아니구나.” 삶에는 THE END가 없다. 엔딩이라 한다면 죽을 때인데 그건 이미 삶이 아니기에 모순이 된다. 그러니까 삶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다. 그리고 영화는 그 순간순간을 짧게 잘라 편집한 것이다. 비포 선라이즈만 해도 겨우 하룻밤에 일어난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가 끝나면 에단은 미국으로 돌아가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쓰고, 줄리도 프랑스로 가서 자기 할 일을 할 것이다.

비포 선라이즈가 사랑의 전부라 생각했다면 나는 평생 만족할 수 없다. 설령 그런 순간을 마주했어도 그 이후에는 다시 영화 같지 않은 현실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야 나는 이 괴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는 내게 지루한 현실 이상의 것을 보여주면 꿈을 꾸게 했지만, 어느 순간 그것 자체가 현실이라는 환상을 심어주었다.

사실 결과론적인 사후 판단도 같은 양상이다. 누군가의 성공 스토리를 보면 그가 어떻게 성공했는지 나온다. 아무것도 없었지만 무작정 길바닥에 나가 뭔가를 했고, 누구를 만나 어떻게 하니 짜잔! 억만장자가 됐다. 어디서 많이 본 플롯이다. 이건 사실이지만 현실은 아니다. 그의 영웅적인 행동의 사이 사이에 무수히 많은 현실들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못 보고 지나친다. 신문 기사에 소개된 낭만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도 그 이전과 이후엔 평범한 현실이 있다. 여행에서 극적인 경험을 한 사람은 여행을 떠나기 이전과 이후에는 평범한 삶을 살았다.


나는 지금 당장 뭔가 극적인 걸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었다. 내가 꿈꾸던 삶과 지금의 삶이 너무 다른 모습인 게 괴로웠다. 상상 속 나는 영화 같은 화려한 삶을 사는데 지금은 도서관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영화 같은 장면은 1년 중 단 한 번, 어쩌면 5년 어쩌면 10 중 한 번이다. 우리는 그 한 번을 위해 지루한 코스를 계속 달려야 한다. 우사인 볼트가 트랙에 서기까지 똑같은 일상을 얼마나 많이 반복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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