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착각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 두 번째 방법은 그 사람이 동의하지 않는 주장을 다수의 주장인 것처럼 꾸미는 것이다. 그는 집단의 순응하기 위해 자신은 그 주장을 믿지 않지만 마치 믿는 것처럼 행동하고 말할 것이다.
1950년대, 솔로몬 애쉬는 막대한 파급력을 몰고 온 실험을 실행한다. 이른바 “동조 실험”이다. 학부생에게 아주 쉬운 문제를 풀게하는 실험이었는데, 실험 집단에서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은 미리 섭외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정답은 누가봐도 명백했는데, 나머지 사람들이 전부 오답을 고르자 실험 대상자도 그에 맞춰 오답을 골랐다. 여기까지는 흔히 알려진 이야기다.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실험이 끝난 후 인터뷰에서 벌어진다. 실험이 끝났기에 더이상 집단에 속하지 않았는데도 실험 대상자들은 자기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인지부조화가 일어나 자신의 믿음을 바꾼 것이다.
최근 애쉬의 실험이 다시 진행됐다. 이번에는 FMRI를 동원해 실험 대상자의 뇌를 살펴봤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집단에 순응하는 대답을 할 때 시각을 담당하는 부분이 변한 것이다. 대상자들은 그저 집단에 요구에 맞춰 심리적으로 대답한 것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오답이 실제로 옳게 보였다는 것이다. 즉, 사회 분위기에 따라 우리 실제 기억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실시간 감각과 미래에 대한 관념까지 조작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인간은 정보의 신뢰성이나 완성도보다는 일관성을 신뢰한다. 조화와 생존을 위한 자동적 사고의 결과다. 때문에 그것이 잘못된 정보라도 일관성 있게 제시된다면 믿어진다. 특히 정보가 제한될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강화된다. 이러한 일련의 사고과정으로 후광효과가 일어난다. 처음의 본 정보로 대상을 판단하는 것이다. 어떤 사건에 대해 처음 본 의견이 부정적이라면 그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확증편향에 의해 “그것은 부정적이다”라는 의견에 부합하는 정보만 습득한다. 이로써 믿음은 강화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벌어지는 사회 현상이 바로 집단 착각이다. 집단 착각이란 가까이서 그리고 자주 들리는 가장 강한 의견을 다수의 의견이라 착각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집단 착각의 결과로 아무도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왜냐면 집단 착각은 아무도 믿지 않지만 모두가 믿는다는 착각을 만들기 때문이다. 모두가 공산주의에 반대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공산주의를 지지할 것이라 착각했던 것이 침묵을 낳고, 그것이 실제 공산주의자들의 발판이 되었다.
집단 착각은 위처럼 집단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단위에도 영향을 미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다른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 착각하는 것이다. 예를들면 나는 선행을 베푸는 것을 좋아하지만 남들은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해 베풀지 않는다. 나는 배신하고 싶지 않지만 상대는 배신할 것이라 생각해 배신한다 등.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결과를 맞이한다.
집단 착각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상황으로 우리를 이끈다. 바로 다양성의 종말이다. 다양성의 말소는 생명체에겐 가장 취약한 상태다. 집단 착각이 극심해진다면 인간은 품종 개량된 바나나처럼 병에 걸려 시들시들해질 것이다.
물론 집단 착각은 인간의 본성이다. 전 인류사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났지만 극단은 반대 극단을 초래해 균형을 맞춰왔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과거엔 전쟁이 일어나도 파멸은 아니었지만 핵무기가 생긴 지금 핵전쟁은 회생 불가능한 파괴적인 결말을 맞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사회에는 SNS와 AI가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인터넷에서의 모든 컨텐츠의 80%를 10%의 인류가 만든다. 즉 10%가 전체의 의견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여기에 더해 AI의 발달로 선동과 심리전이 쉬워졌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의도자 (대외) 와 비의도자 (대내) 모두 봇을 만들어 선동한다. 봇은 더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주장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쉽게 현혹된다. 연구결과 특정 주제에 대한 토론에서 봇이 5%만 섞여도 여론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SNS에서 사람들이 만나고 소통하는 10~20%가 봇이라고 한다. 이미 여론은 봇에게 지배 당했다. 마음만 먹는다면 어떤 여론이든 만들 수 있다. 여론에 의해 고 이선균씨는 국민 영웅이 될 수도 있다.
도대체 진짜 여론이란 무엇일까? 진짜 여론을 이해하는 방법이 존재할까? 철학적인 의미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의미로 세상은 거짓 천지다. 혹자들은 이것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나는 이러한 집단 착각이 너무나도 무섭다. 절대적인 권리인 사상의 자유에서도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며, 심지어 거역할 수 없는 교묘한 방법으로 우리가 통제되고 있기에 (비록 의도한 방향이 아니거나 주체자가 불명확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에 대응할 수조차 없다는 사실이 말이다.
핵폭탄의 개발이 전 지구를 불바다로 만들 것이라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전쟁을 억제하는 힘이 되었다. 집단 착각도 인류를 멸종시킬 능력이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반대 진영에게 힘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앞선 깨달음에서 발견한 것은 미래를 걱정하고 불안해 하는 것은 대체로 무용하다는 것이다. 결국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나로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상책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현상에 대해 이해하고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 문제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나는 그 단계를 이해했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된다.
- 나의 주관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은 나의 의견에 대한 가치판단은 미루고 일단 관철하는 것이다. 두 가지 단계로 나뉜다. [주관 갖기]와 [주관 유지]이다. 주관이 없는데 유지할 수 없다. 그러나 주관을 갖는 것은 분명 어렵다. 주관이라는 것조차 타인의 의견에 대한 종합에 불과하니 말이다. 여기서 나의 경험, 타고난 성향, 타인의 주관을 종합적으로 녹여내어 나만의 색채를 갖게 하는 것이 바로 주관이다. 많이 경험하고, 나의 성향을 이해하며, 책 (예술, 문화 등 포함)을 많이 읽는 것이 그 핵심이다.
나름의 주관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면 주관을 유지해야 한다. 실험에서 밝힌 것처럼 내 주관이 있어도 집단 사고에 의해 쉽게 휘둘린다. 타인의 눈치를 보고, 혼자 재단하고, 자신의 주관에 대해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80대20 전략”으로 주관을 유지하는 게 좋다. 내 주관이 맞든 틀리든 80%는 유지해라. 80%의 내용을 유지하라는 말일 수도 있고 80%의 힘으로 고집을 부리라는 뜻일 수도 있다. “내가 틀렸더라도 일단 나는 내 생각대로 행동한다.” 라는 마음이다. 나머지 20%는 내가 틀렸을 가능성을 염두하고 겸손함을 견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공존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가벼움을 지닌다면 불가능하지 않다. 애초에 맞고 틀린 것은 모호하며 상대적인 것이란 걸 체화하면 틀림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내 뜻대로 한다.”
이러한 주장이 무모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은 어느 모로 보나 가장 이로운 길이다.
개인적 이점
집단착각에서 벗어나 비교적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 외에도 주관 유지는 우리 건강과 직결된다. 나의 주관을 관철하지 않는 행위는 거짓말이다. 나는 사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그런 것처럼 행동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스스로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기 말을 검열하거나 거짓말(숨기거나 침묵도 포함)을 하면 자기 내면의 불일치가 부조화를 일으켜 스트레스가 고조되고 코르티솔이 증가한다. 코르티솔은 본래 일시적인 호르몬인데 이렇게 코르티솔 수치가 높게 유지되면 지속적인 스트레스가 유발된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인 것은 경험해보지 않고선 실감가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별로 권장하고 싶진 않다. 또한 코르티솔은 심혈관에 치명적이다. 단명하고 싶다면 거짓된 삶을 사는 게 좋다.
집단적 이점
제임스 서로위키의 [대중의 지혜]에서 집단 지성이 되려면 완전한 독립성 보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적은 정보로 추정치를 맞춰야 하는 문제를 내는 실험에서 (이를테면 “이 병의 동전이 몇 개 있는지 맞춰라.”) 개인들의 판단은 분명 형편없다. 하지만 집단 판단의 평균은 실제 답과 굉장히 유사했다. 평균회귀라는 것이다.
이런 집단 지성이 가능하려면 집단 속에서 개인들의 판단이 온전히 독립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즉, 개인들의 답변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명이서 토론 후에 정한다면 목소리 큰 소수의 의견이 집단 착각이 되어 형편없는 답을 내놓을 것이다. (어차피 개인의 답은 형편없으니). 그러니까 다수의 답을 따라 가는 게 옳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 다수는 사실 다수라고 생각되는 소수일 뿐이며 가장 멍청한 답일 확률이 높다. 차라리 모든 개인이 자신의 주관을 관철하는 편이 더 다양한 의견을 만들어 집단지성 발휘에 용이하다.
- 집단착각 넛지
이런 현상이 있고,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은 이 현상을 이용하는 것이다. “거짓말의 발명”이라는 영화를 보면 거짓말을 처음 발명한 사람이 거짓말을 이용해 이득을 취한다. 그것의 결론은 그것이 개인적 욕심에 의한 부정 이득이냐, 결과적으로 세상을 더 이롭게 했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현상을 이용하는 것 자체는 가치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오직 왜, 어떻게 이용했느냐가 중요하다.
집단 착각을 이용해 넛지를 가한다면 사람들을 내가 원하는 형태로 행동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론을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수의 의견이 아니라 “다수의 의견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따라 간다. 바로, 다수의 의견을 조작하는 것이다.
“텍사스인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습니다.”라는 공익광고는 텍사스인의 정체성을 만들면서 동시에 “다수의 텍사스인 이렇게 행동한다.”라는 인식을 줬다. 천재적이다. 실제 텍사스인들이 그러는지 안 그러는지 누가 알겠는가?
내 근처에서도 이를 이용하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올리브영에서 물건을 셀링할 때 배운 것이다. 사람들에게 “저희 매장에서 가장 잘 나가는 거예요.”라 말해라. 실제로 내가 많이 팔거니까 거짓말은 아니란다. “다수의 사람들이 이걸 많이 사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올리브영 물건을 보면 너도나도 1등이다. 1등은 “다수가 이걸 쓴다.”를 함축하는 말이다. 저게 뭐에서 1등인지는 안 알려준다. 우리 엄마 픽 1등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걸 누가 신경쓴단 말인가
집단 착각 넛지의 핵심은 두가지 심리를 공략하느 것이다. 바로 소속감과 불안감이다. 텍사스인과 올리브영은 소속감을 자극한 것이다. 불안감은 더욱 강력하다. “모두 이걸 하니 너도 해라.” “모두 이렇게 하지 않으니 너도 하지 마라.”라는 것이다. 해사에서 질리도록 경험한 것들 아닌가? 그 누구도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그만큼 넛지의 힘은 강력하다.
- 여론에 대한 태도
온라인 여론은 대부분 착각이므로 믿지 마라. 온라인은 이미 봇에게 지배됐다. 더욱이 온라인은 에코 챔버를 만들어 나와 비슷하고, 내 의견의 동조하는 사람들만 보인다. 그리고 우린 그것을 대세, 주류, 여론이라고 아주 쉽게 믿는다. 우리는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라는 사상을 강요받고 강화하게 된다. 온라인 여론을 믿어서 나에게 이로운 점이 대체 뭐가 있을까? ZERO다. 정보를 참고하되 항상 빙산의 일각을 떠올려라. 마치 게임과 같다. 우린 게임 캐릭터를 통해 동기화된 맵만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진 않진 않은가? 더 넓은 세상은 결코 내 시야에 있을 수 없다.
대신 실제로 얼굴을 맞대고 만난 사람들의 의견에 더 높은 점수를 줘야 한다. 실제 사람을 만나 의견을 나누고, 모임을 가져라. 내 친구들은 나와 유사한 사람들임에도 그들만 만나도 새로운 세상을 늘 경험한다. 전혀 모르는 사람은 어떻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