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있을진저
다른 사람이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 방법은 매우 쉽다. 그 사람의 과거 행동이나 주장에 대해서 꼬치꼬치 물으며 모순된 것을 집어내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그는 당황해서 자신을 변명하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를 마구 지어낼 것이다.
우리의 사고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감정이 발생한다. 그 후에 이성이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설명한다.” 심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면 사람들이 하는 “말”에서 얼마나 많은 모순이 발생하는지 알 수 있다. 그 사람의 진심을 알고 싶다면 행동을 보아라. 말은 사후에 덧붙여진 변명일 뿐이다. 만약 그 모순을 타인이 집어낸다면 그것을 덮기 위해 더 큰 거짓말로 거짓말을 덮으려 할 것이다. 조금 더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말들 사이의 모순을 집어내라. 그러면 상대는 크게 당황하며 정지하거나(정지), 분노하거나(투쟁), 회피하려 할 것이다(도망).
물론 이렇게 하는 것은 아싸가 되는 지름길이다. 그것을 권장하거나 옳은 것이라 얘기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저 말하고 싶을 뿐이다. 사람들은 이런 모순을 느끼지 못할 뿐더러 느낀다 해도 큰 위화감 없이 넘어간다. 애초에 자신의 행동에 대한 그럴싸한 변명을 미리 생각해서 치밀하게 구상해 놓은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에 설명을 요구한다면 멍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 사람의 말을 믿는 것은 무지하거나, 그런 척 하는 사람일 뿐이다.
글은 어떤가. 글은 더욱 악질이다. 글로 쓴 내용은 말보다 더 진심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중국 공산당은 전쟁 당시 미군 포로에게 강제로 미국을 비판하고 중국을 찬양하는 글을 쓰게 했다. 그리고 그 글을 다른 포로들한테 보여주거나 읽게 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강요에 의해 쓰여진 글임에도 인지부조화와 편향으로 인해 끝내는 진짜 공산당을 찬양하는 미국인이 되었다.
글을 쓸 때 솔직하다고 생각하는가? 전혀 아니다. 그럴싸한 이름을 가져와 자신의 감정과 행동에 붙이며 자신을 설득한다. 내가 글로 쓴 것이라면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아 사실 난 그랬던 거구나.” 우리는 모두 자신의 거짓말을 진심으로 믿는 허언증 환자다. 심리에 능통한 제 3자가 그것을 분석해주지 않는 이상 자아의 진실에 도달하기란 매우 어렵다. (불가능하진 않더라도.)
그래도 진실을 밝혀 자신의 어둠과 치부를 드러내려는 노력을 하고 습관을 기르는 사람이라면 점점 나아질 것이다. 그런데 알다시피 그 과정은 매우 고통스럽고 처절하며 지저분하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멋있는 “1인의 주인공”이 아니라 내가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넘겨버리는 퇴근길 지하철 속 대중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일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그것은 나의 존재감을 서서히 지우는 일과 비슷하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거짓말이 자신을 집어삼키도록 두는 것이다.
세상이 이럴진데 도대체 진실되고 투명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단지 나의 그릇되고 허황된 마음의 욕심일 뿐일까? 진실을 말하고 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그들이 온 세상 사람들의 차가운 눈초리를 받는다는 것을 생각하며 진실된다는 것이 정말 이로운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왜 진실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다.
내 눈에 비친 세상엔 진실된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거울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영원을 속삭이는 저 커풀도 거짓, 저 친구들의 우정도 거짓, 저 웃음, 저 울음, 저 기쁨과 분노, 저 땀과 노력들 모두 거짓이다. 좋게 포장해보자면 “그것은 거짓이라기보단 진실이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지경에서 그것이 뭐가 중허겠나.
내가 너를 사랑할 수 없는 이유는 네가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에서 거짓된 모순의 냄새가 풍기기 때문이다. 제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그것을 나는 유독 잘 맡을 뿐이다. 물론 그것이 너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그들의 조건에서 잘잘못을 겨뤄보면 어디까지나 유별난 나의 잘못이지. 그런 내가 나의 글 행간 마디마디 마다 악취가 들이키는 걸 느끼지 못할리가. 그런데 거짓 사이사이 묻어 있는 진실들이 나의 목을 조를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것도 나의 고질병이다.
예수는 거짓조차 사랑했을까? 그래 그랬지. 그 거짓이 자신의 손을 꿰뚫고, 살갗을 찢으며, 고통에 신음하게 만들었어도 그는 자비를 빌었더랬지. 빌어먹을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