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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거짓

작성 2023.12.25분류 글주제 예술과 철학

영화 [파비안느의 진실]에서 작 중 프랑스의 전설적인 원로배우 파비안느는 자신의 자서전에 온갖 거짓말을 늘어놓은 채 출간했다. 그녀의 딸은 파비안느의 자서전을 읽고는 온통 거짓이라며 파비안느에게 따졌다. 그러자 파비안느는 자신은 배우이기 때문에 항상 진실만 말해야 할 필요는 없다며 반박했다. 그녀의 딸은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만약 지루한 진실과 흥미로운 거짓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고를텐가? 마치 네오의 파란약, 빨간약과 같다. 혹자들은 오로지 빨간약만이 진정으로 가치있는 것이며 인간은 안일한 만족감보다는 고통스럽고 참담하더라도 진실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영화에서 모피어스는 빨간약과 파란약을 건넨다. 그는 빨간약을 오른손 (right)에 들고 있다. 인간이 빨간약을 고르는 것은 옳은 (right)일이라는 뜻이다.

물론 매트릭스에서 전하고자 하는 바는 파비안느의 주장과는 상당히 결이 다르다. 자본주의 그리고 인간의 삶의 모순과 불합리를 인정하지 않은 채 그저 챗바퀴 중 하나로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진실을 깨닫고 주체적인 인간으로 거듭날 것인지에 관한 것이 매트릭스다. 하지만 이는 “언제나 진실이 옳다.”라는 잘못된 관념을 심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 원점으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도대체 진실이 무엇이란 말인가. 영화에서 파비안느와 그녀의 딸은 끊임없이 과거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가 기억하는 과거와 파비안느가 기억하는 과거가 다르다. 도대체 뭐가 진실인지 혼란스럽다. 딸은 자신의 기억이 진실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엄마의 내막을 들어보니 자신이 기억한 과거와는 사뭇 다른 점들이 있었다. “기억이라는 건 언제나 변해.”

진실은 기억인가? 기억은 진실인가? 진실이 아닌 건 기억이 아닌가? 명제가 참이면 그 대우도 참이다. 대우가 참이면 명제도 참이다. 나는 100% 진실만 기억하는 가. 절대 아니다. 진실은 어디까지나 관념이다. 내가 진실이라 믿기 때문에 진실이 된 것이다. 물론 “진실”이라는 절대적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실이 무엇인지 도달할 수 있을까?

관념에 의존하는 진실은 아주 모순적이다. 진실이라는 옷을 입고 있는데, 그 속살을 파헤쳐보면 그건 진실이 아니게 된다. 진실인데 곧 진실이 아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진실이든 아니든 뭐가 중요하냐는 것이다. 기억은 왜곡된다. 관념은 어떤가? 왜곡되지 않은 것을 관념이라 할 수 있는가? 각색은 거짓말인가? 그렇다면 각색되지 않은 기억은 있는가? 그렇다면 각색되지 않은 진실은 있는가?

인생이라는 곳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싶은 나에게 이 물음들은 의미가 깊다. 진실된 삶과 진실된 문학이 가치있고, 옳은 것이라 믿어왔다. 하지만 도대체 진실됨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문학으로 옮겨지는 순간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진실이란 그 순간에 삶의 현장에서만 진실될 수 있는 것이다. 한 대문호는 말했다. “훌륭한 소설 수십 개를 쓰는 것보다 진정한 삶 하나를 사는 게 낫다.” 세상의 진실이 이러한데 진실된 문학을 하겠다는 고집은 그저 위선이 될 수 밖에 없다. 지루한 진실과 흥미로운 거짓 중에 고르자면 나는 의심할 여지없이 후자다. 오히려 지루한 진실이 더욱 위선적이고 거짓이 훨씬 인간적인 무언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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