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M LWM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는 지능을 9개의 분류로 나누어 다중지능이론을 제시했다. 거기에는 언어 지능, 논리수학적 지능을 포함해 자연친화 지능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지능이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인간의 지능이 결코 단일한 영역이 아니라는 것은 어느정도 정설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한 분야에서 천재성을 보이는 사람이 다른 분야에서는 평균보다 못 미치는 역량을 보여줄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 뇌는 수많은 능력을 보유하고 있고, 그 능력치는 사람에 따라 판이할 것이다. 만약 어떤 학생이 좋은 대학을 갔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이겠는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모든 게 평균 이상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수학적 지능이 천재적이었을 수도 있고, 자기통제 지능이 높아 노력을 열심히 했을 수도 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인간의 뇌는 가소성이 있고, 특히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굉장히 유연하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이나 에디슨이 ADHD였다는 얘기를 들어 봤을 것이다. 그들은 어떤 분야에선 일반인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들은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다른 영역을 개발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성공하기 위해선 육각형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오히려 결함이 있는 사람이 그것을 극복할 때 더 성공에 가까워질 수 있다. (애초에 육각형 인간이란 게 존재하는 지도 의문이다.)
이 글에서 직접적으로 삼고 있는 주제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이것이 인생과 지능에 대한 나의 전제이다. 물론 지능이 높은 게 좋다. 하지만 모든 지능이 애매하게 평균 이상인 것보다 차라리 어떤 지능이 다른 것보다 월등히 높은 개성있는 지능이 더 인간적이고, 특이성을 갖는다. 아직 우리 사회는 뇌와 지능에 대해 잘 모른다. 다만 어떤 뇌의 어떤 부분이 어떤 지능, 어떤 능력과 연관되는 지 이해할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발달된 사람이 무엇을 잘 하고, 못 하는 지 얼추 예상한다. 때문에 누구도 확신할 수 없으며, 지능에 대해 편협한 생각을 하거나 미신적인 믿음을 갖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문제 해결 등 작업 수행을 위해선 작업기억 (Working Memory)이라는 활동이 필수적이다. 작업기억이란 다른 감각기관으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를 머리 속에 잠시 잡아 뒀다가 기억하는 능력이다. 이는 관련 없는 정보를 억제하고 필요한 문제를 기억함으로써 주의 집중과 문제 해결 능력에 반드시 필요한 역량이다. 심지어 작업기억은 타인을 기억하고 그들의 감정 변화를 기민하게 알아채는 역할을 해 대인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즉, 작업 기억력이 좋은 사람은 수행력이 좋다. 학습에 관하여 정말 많은 것들이 작업 기억에 의존한다. 정말 단적인 예를 들어 국어 시험을 볼 때 지문을 읽고 문제를 풀려 하는데 지문을 바로 까먹으면 문제를 풀 수 없다. 작업 기억력이 좋은 사람은 책을 읽을 때 전 페이지에 읽었던 내용을 기억하고 현재 페이지와 융합할 수 있다. 이처럼 작업 기억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가능한 일은 무궁무진하고, 그 파급효과는 중첩되면서 엄청난 효과를 낳을 것이다. 또 이는 집중력과 연관된다. 작업 기억 능력이 좋은 사람들은 집중력이 좋다. 우리 뇌는 무한정 돌아가는 컴퓨터가 아니기 때문에 의식적 활동에는 한계가 있다. 이전에 봤던 것들을 기억하는 것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일이고, 그것을 오래 기억할수록 집중력의 한계가 높다는 뜻이다.
그런데 연구결과 아이러니 한 점은 작업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 (이하 HWM - High Working Memory) ) 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수행력이 떨어지고, 작업 기억력이 좋지 못한 사람 (이하 LWM) 은 수행력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직관적인 예상으로는 LWM이 처음부터 용량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영향을 많이 받을 거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HWM만 작업 기억력이 하락했다. 즉, LWM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고, HWM만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는 두 가지를 시사해준다.
- HWM 오해
스트레스 상황에서 HWM의 수행력은 떨어지기에 그가 실제로는 더 능력 있는 사람임에도 그를 능력 없는 사람으로 오해하기 쉽다는 것이다. 시험으로 능력을 판단하는 현재 제도는 이런 고능력자들을 배제할 위험이 있다. 이들은 스트레스가 없는 상황에선 더 잘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능력이 떨어지고, 정작 원래 능력이 없지만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비슷한 LWM이 우대받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게 무엇이 문제냐면 우리 사회가 인재들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HWM이라 해서 처음부터 모든 게 완성된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같은 일을 해도 LWM보다 훨씬 크게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초입 단계에서 이들이 걸러지게 된다면 그들이 발전하고 학습할 수 있는 사회적 발판이 제거된 것이다.
이 사실은 만약 내가 사람을 고용해야 하는 입장에 선다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지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를 준다. 고용하는 것까지 아니더라도 사람을 알아봐야 한다면, 훨씬 능력 있는 사람을 저평가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HWM을 알아보기 위해선 편안한 상황을 조성하는 게 유리하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자. “어차피 시험은 봐야 한다.” “스트레스는 불가피하다.”라는 식으로 이 사실이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한다면 그건 중책 정도 될 것이다. 분명 더 나은 방법이 있다. 상책은 HWM에게 편안한 상황을 조성해 최상의 수행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다. 적극적이고 현명한 인적자원관리는 그건 어쩔 수 없다며 방관하는 게 아니라 최상의 상황을 만들기 위해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생각을 바꿔라. ‘될까, 안 될까’ ‘할까, 하지 말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 스트레스 상황
반면 HWM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기량을 발휘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뇌는 가소성이 있기 때문에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의 인생에는 항상 스트레스가 있고, 항상 그건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한 HWM 본인도 스스로가 스트레스가 없는 상황에 처하도록 구조적인 변화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