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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지 못하는 이유

작성 2023.12.18분류 글주제 인간과 삶

The world is full of suffering but it is also full of people overcoming it.

시각과 청각장애를 극복하고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 헬렌 켈러가 한 말이다. 어릴 적 헬렌 켈러의 책을 읽어본 적 있다. “사흘만 세상을 볼 수 있다면”이라는 제목으로 유명한 책인데, 그녀 자신이 어떤 유년 시절을 보냈고, 어떻게 역경을 극복했는지에 관한 자서전이었다. 워낙 어릴 때라 그런지 별다른 감흥 없이 읽었던 게 기억난다. 그러나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참 대단하다. 앞도 보지 못하고, 들을 수조차 없는 그녀가 20대에 이미 5개국어를 익혔다. 그녀 곁에 훌륭한 사람들이 있어 “운이 좋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것을 극복한 사람으로도 가득하다. 이건 사실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극복했느냐를 아는 것이다. 너무나 보편적이게도 내 곁에도 마찬가지로 고통이 넘칠 듯이 가득하다. 때문에 “어떻게 고통을 극복하느냐”는 나의 주된 관심사였다. 더욱이 그것을 넘어 “어떻게 고통을 겪지 않을 수 있는가”로 넘어간다. 전자는 고통을 맞닥뜨렸을 때 이겨내는 법이고, 후자는 고통을 애초에 마주하지 않는 법이다. 나는 후자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부산까지 걷는 고통을 마주하고 싶지 않으면 KTX를 타면 된다.

‘어떻게’는 미시적, 거시적 관점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헬렌 켈러는 중복장애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걸맞는 교육이 필요했고, 그에 따라 설리번 선생님이라는 은인을 만났다. 반면 나는 시력도 좋고, 귀도 멀쩡하다. 나는 공교육을 받았고 가정교사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와 나는 무척 다르다. 그녀가 내게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구체적인 해답을 제공해줄 수 없다. 답은 내가 직접 찾는 수밖에 없다. 나와 똑같은 환경과 조건을 갖춘 이는 이 세상에서 오직 “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고통받는 이유는 행복하지 못해서다. 그러나 내가 행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불행하기 때문이 아니다. 불만족 하지 않음이 만족과 동의어가 아니듯이 불행의 부재가 곧 행복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모로 보나 나는 불행하지 않고, 불행할 이유가 전혀 없다. 나는 오히려 분에 겨운 행복을 누려야 할 사람이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행복을 “못”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성장했다. 나의 삶은 물론 세상에 관한 전반적인 문제에 과학적 방법론을 적용하길 선호한다. 문제의 원인을 명확히 정의하고 그 원인을 분석해 적절한 해결책을 고안하는 것이다. 첫번째로 정의한 문제는 삶을 즐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러 방법으로 원인을 분석하던 중 깨달은 점은 “나는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다.”라는 가설은 틀렸다는 것이다. 분명 행복하게 살던 때가 있었다. 관건은 지금과 그 때가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다.

단지 나의 마음가짐과 생각이 아니라 무엇이 그 마음가짐과 생각을 달리하게 만들었는가? 나의 결론은 “호르몬”이다. 감정과 이성에서 감정은 비과학적인 영역이 아니다. 감정은 이성보다 앞선 의사결정 주체이며, 뇌와 호르몬에 의해 지배받는다. 그렇다고 우리가 온전히 감정의 손을 들어야 하는 건 아니다. 비록 결정권은 대체로 감정에게 있지만 어느 부분에서 이성은 감정에 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는다. 즉 감정은 “왕”이지만 이성은 왕을 견제하는 “귀족”들인 셈이다.

이성은 통제가능하고 과학적 영역이지만 감정은 그렇지 않다는 미신적 믿음이 왕을 미치광이 폭군으로 만든다. 감정은 호르몬에 의해 움직인다. 인간의 행복을 담당하는 호르몬 중 주요한 것은 도파민과 세르토닌이다. 도파민은 큰 자극에 의한 쾌락이며, 성취하고자 하는 동기를 만든다. 반대로 세르토닌은 일상적인 행복감을 느끼게 하고 안정감을 준다. 이 두 호르몬이 왕성한 젊은 시기에는 혈기 넘치지만 그 수용체가 망가져버린 노년기에는 의욕없이 삶을 연명하게 된다.

나는 아직 도파민과 세르토닌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가 이런 우울감을 느끼는 건 이 두 호르몬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경쟁심이 없고, 자주 우울감과 무기력함을 느껴왔다. 후생적 요인인지 아니면 선천적으로 적게 태어난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호르몬은 노력으로 (현대 과학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

운동과 명상을 하고, 자극적인 것들을 줄이며,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누군가는 이런 것들만으로 큰 효과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경험 상 나는 아닌 듯 하다. 운동으로 해결하려면 운동선수가 됐어야 할 것 같다. 그런 쾌락을 느낀 건 주짓수를 하며 죽을 수도 있다는 느낌을 느낄 때, 마라톤을 하며 러너스 하이를 느낄 때, 탈진할 때까지 농구경기를 뛸 때와 같이 고강도 트레이닝에서나 가능하다.

더 적극적으로 이 두개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도파민은 크게 어렵지 않다고 본다.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도파민은 강한 자극을 요하기 때문에 추구하면 할수록 내성이 생겨 더 큰 자극만 찾게 된다는 부작용이 있다. 반면 장기적 행복감과 관련해선 세르토닌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세르토닌은 수면의 질하고도 연관이 깊은데, 나는 줄곧 깊게 잠을 자지 못했다.

찾아보니 세르토닌에 도움이 되는 영양제가 있다고 한다. 세르토닌은 테아닌, 트립토판 같은 아미노산에서 만들어지는데 이것들은 외적인 섭취를 통해서만 흡수할 수 있는 아미노산이다. 따라서 이것들을 먹으면 세르토닌 합성에 용이하다. 불면증이나 우울감 극복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정신과 약을 먹고 싶진 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영양제인 것 같다. 엄밀히 약은 아니고 보조제이니 큰 부작용은 없었다. 쿠팡에서 비타민을 포함해 테아닌과 트립토판을 구매했다. 오늘 비타민 D와 종합비타민이 도착해서 방금 먹었는데 벌써부터 기분이 조금 좋아지는 느낌이다.

플라시보일 수 있지만 아무렴 어떤가. 나아진다는 것이 중요하다.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도움을 받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쓸데없는 자존심으로 아파도 약을 먹지 않고, 추워도 옷을 입지 않고, 배고프고 목말라도 참고 했던 모든 것들이 멍청하게 보였다. 나를 보면 안아키 아줌마를 볼 때 심정일까? 아무튼 해외 직구라 배송이 좀 걸리지만 오면 먹어보고 후기를 남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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