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낙 (해설)
요즘 들어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했다. 혹자들은 이런 의문이 무슨 쓸모가 있냐며 나를 타박하기도 했지만 이미 나의 온 정신세계가 그것에 몰두해있는 걸 어쩌겠는가. 나는 그것들을 생각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이었다. 같은 직장에서 몇 년이나 반복된 하루를 보낸다. 한 명의 연인과 더 이상 새로울 것 없는 나날들을 보낸다. 가족들과 매일 먹던 그 밥을 먹는다.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하루를 생각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지 궁금했다.
나는 남들보다 쉽게 권태에 빠졌다. 아마도 모든 것에서 원리를 도출해내려는 습관 때문인 것 같다. 규칙성을 발견하려 하다 보면 무엇이든 찾게 된다. 설령 그게 틀린 설명이어도 상관없다. 규칙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다보면 한 두번만 경험해도 이 모든 것들이 종국에는 반복될 것이란 걸 알아버린다. 그러면 지금 이 순간에 느끼는 감정들이 대개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같이 알바를 하는 그녀에게 삶의 낙이 뭐냐고 묻자 “사람들을 만나 웃을 일이 있다는 게 삶의 낙이다. 나는 그게 너무 좋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삶의 낙 같은 건 생각해 본적도 없고, 필요하지도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내가 물어보면 그제서야 그럴싸한 대답을 만들어낼 것이란 것도 안다. 하지만 모든 농담엔 일말의 진심이 묻어있듯이 그런 가식적인 말들에도 진심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는 실제로 사람을 만나 웃고 대화하는 걸 좋아한다.
그녀가 역으로 나에게도 물었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영화 보는 거 좋아하시지 않아요?”라 물었다. 그녀에게 언제 그런 얘기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문득 생각났다. 나는 영화보는 걸 좋아했었다.
이미 지나가 버렸지만 나는 모든 일들이 끝나고 이번주를 “나에게 주는 휴가”라고 이름 붙였다. 뒤돌아보니 전역하고 8, 9, 10, 11월 내내 거의 쉬지 않고 달려왔다. 여자친구를 만나 노는 건 결코 쉬는 게 아니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살아왔구나 싶어 이번 한 주 아니 12월 달을 이렇게 보낸 게 그리 후회되지 만은 않았다.
저번 주 내내 누군가를 만나 에너지가 고갈되어 지쳤다고 느껴졌고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마침 여친도 시험기간이라 만나지 않기로 했고 나는 집으로 왔다. 목요일까진 알바기에 쉴 틈이 없다. 그런데 수요일부터 몸이 이상해지더니 알바가 끝나고 금요일 아침이 되자 정상이 아니라는 걸 단번에 알았다. 나는 심한 감기에 걸렸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나의 몸도 쉬길 바랐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마침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죄책감을 내려놓고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나는 유튜브, 인스타, 웹툰 등 대부분의 앱들을 지웠다. 카톡도 지우고 싶었지만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니 지금은 타이밍이 아니다 싶었다. 딱히 할 게 없었지만 책상에 앉기 힘들었기에 (아니 앉고 싶지 않았다가 맞겠다.) 영화를 보았다. 금토 이틀 간 8편의 영화를 봤다. 보다 멈춘 것도 포함하면 15개는 될 것이다.
맞다. 나는 영화를 참 좋아했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이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영화를 보며 사람들을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사랑하며, 무엇을 후회하고, 무엇에 슬픔을 느끼는 지 보았다. 나 역시 영화같이 살고 싶었던 때를 떠올렸다. 나는 이토록 영화를 좋아하는 데 왜 영화를 보지 않았을까?
치킨도 시키고, 피자도 시켰다. 평소라면 그냥 집에서 밥을 먹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너무 맛있었다. 나는 먹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먹는 건 나의 행복이자 삶의 낙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잘 먹지 않는다. 하루에 한 끼만 먹을 때도 많다. 보는 사람마다 왜 이렇게 야위었냐는 말을 한다. 나는 왜 먹지 않게 되었을까?
나는 절제가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중독에 관해 강한 신념이 있었는데, 그것은 중독되는 건 무엇이든 좋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그게 아무리 좋은 것이어도 중독되면 나쁘다고 생각해 어떻게든 끊어내려 했다. 나는 나의 삶을 온전히 통제하고 싶었고, 아주 엄격한 잣대를 세웠다. 그리고 그것을 철저히 지켜나갔다. 자주 삶을 피드백하고 부족한 점을 채웠다. 그러나 얼마전에 내게 부족한 습관이 무엇이 있나 생각해봤는데 이제 절제하고 새롭게 추가할 습관이 그닥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당시에 나는 내가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만 하면 뭐든 이뤄낼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나는 왜 그렇게까지 나를 통제하려 했을까? 내가 밀가루를 끊었을 때 그닥 힘들지 않았던 것은 언젠가는 더 맛있게 도넛을 먹을 수 있을거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쇼츠를 끊고, 술을 끊고, 유흥을 끊고, 아침에 운동을 가고, 야식과 군것질을 끊고, 하루종일 자기개발을 위해 쏟는 이 모든 것들이 결국 무엇을 위해서인가? 나는 무엇이 되지 않기 위해 뭔가를 했을 뿐이지, 무엇이 되기 위해서 한 것은 아니다. 나의 삶은 그런 식으로 흘러왔다.
[무언가에 중독되는 게 뭐 어때서]
나는 왜 그렇게까지 중독을 두려워했을까. 힘들 때 옆사람에게 기대고, 신에게 의지하고, 술도 좀 마시고, 가끔 야식을 즐기고, 영화를 보면서 여유롭게 살아가는 게 뭐가 문제란 말인가. 인생이 그렇게 빡빡하게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조르바가 지방간이 걱정된다며 파티에서 술을 거부했나? 그저 두려움이다. 나를 살아있게 했던 모든 것들은 두려움 뿐이다. 자살하지 않는 이유도 모든 걸 포기하고 도망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이 그리도 두려울까.
삶을 즐기는 게 왜 그리 두려워 냉소적으로 살아갈까? 사람들에게 상처주고, 상처 받는 게 왜 그리 두려워 혼자만의 세계로 은둔할까? 보답받지 못할 것이 왜 그리 두려워 주려고 하지도 않을까? 성공하지 못할 것이 왜 그리 두려워 도전조차 하지 못할까?
조금은 망가지고, 넘어지고, 엉망진창이 되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나의 강박적인 모습이 정상적이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괴하고 소름끼치며, 속을 알 수 없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참 웃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했던 일들이 나를 더 끔찍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그래도 나에겐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열심히 했기 때문에 나를 너무 미워하진 말아야겠다. 나 역시 “그럴수도 있지” 않은가.
결론은 나는 영화를 좋아하니 가끔 영화를 봐야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