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리버드
간혹 그런 날이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내 방 천장이 보인다. 짜증나게 울리는 알람을 끄고 오늘 하루 겪어야 할 고난에 대해 생각한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진짜 공포는 오늘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을 때가 아니라 오늘 뭘 해야 할 지 모를 때이다. 그 막연함이 몰고오는 어둠에 눈이 가려진 채 방안을 더듬거린다. 순간 겁이 난다. 공허한 어둠 속에서 행여 발이라도 걸려 넘어질 것 같아 한 발자국도 뗄 수가 없다. 결국 다시 침대로 돌아간다. 그나마 내가 알고 있고 확신할 수 있는 나의 영역. 결국 이불 밖으로 나가 세상과 마주하는 것이 무서워서 다시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쓴다.
다시 꿈에 빠져들기 위해 노력한다. 꿈 속이라고 마냥 화려한 것은 아니다. 다만 몸서리치게 쓴 현실을 맨정신으로 마주하는 것보다야 백 배 낫기 때문에 꿈에라도 취해있고 싶은 마음일 뿐이다. 다시 잠이 올까 걱정할 필요없다. 포근한 이불 속이 방안에 냉랭한 공기보다 훨씬 낫다는 걸 몸이 알기 때문에 금방 잠에 든다. 비몽사몽 꿈속으로 들어가 쫓기듯 꿈을 꾼다.
이런 하루가 반복되면 아늑했던 이불은 세상 무엇보다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이불 한 겹이었는데, 거듭되는 추위에 두 겹, 세 겹 늘어나기 시작해 이제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불 쯤이야 언제든지 걷어내고 일어날 수 있다고 믿어왔지만 현실은 오히려 이불에게 짓눌려 종속된다. 나는 안으로, 더 안으로 파고들고 만다.
김미경 강사는 젊은 시절 빚을 내 피아노 학원을 차렸다. 그녀는 빚을 갚지 못 할까봐 두려웠다. 그때 어머니가 한 말이 생각났다.
“살다가 일이 안 풀려 겁나거나 무서울 땐 일찍 일어나라.”
그녀는 새벽에 일어나 학원으로 갔다. 그리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어느 날은 그녀는 시간이 남자 학원 아이들 부모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고, 1년 만에 수강생은 200명이 넘었다.
물론 이 이야기에는 엄청난 비약과 결과론적인 결말이 담겨있다. 하지만 요지는 명확하다. 뭘 해야 할 지 모른다면 일단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는 결코 침대에서 써지지 않는다. 침대의 폭신함은 인생의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지나치면 나를 그곳에 계속 머무르게 만든다. 우리는 춥고, 딱딱한 이불 밖으로 나갔을 때야 비로소 성장할 수 있다.
뭘 해야 할 지 모르면 일어나서 운동이라도 해라. 무슨 운동을 해야 할 지 모르면 집 주변을 걷기라도 해라. 아침에 일어나면 책이라도 읽어라. 무슨 책을 읽어야 할 지 모르면 도서관에 가서 앉아있기라도 해라.
또 다른 관점은 무료함이다. 나는 인간에게 무료함이 큰 원동력이 된다고 믿는다. 인간은 무료함을 이기기 위해서 무엇이라도 한다. 책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사람도 빈 방에 책 한 권 만주면 재밌게 읽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 삶에 무료함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계속 잠만 자면 무료할 틈이 없다. 거기에 끝도 없이 쏟아지는 유튜브 쇼츠와 릴스를 보고 있다면 우리 삶은 무한한 엔터테이먼트로 가득하다.
김미경은 일찍 일어나 유튜브를 보지 않았다. 그녀는 학원에 가서 앉아있었다. 일찍 일어나서 무료한 하루를 보내라. 그러면 인간은 움직인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은 이유는 단지 할 일이 없으니까 벌레라도 잡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일찍 일어나는 새는 어느새 벌레 잡기의 고수가 되어있을 것이다.
결론은 내가 하는 일, 하려는 일이 무엇이든 일단 일찍 일어나라. 그리고 스스로를 심심하게 만들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