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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낙 (본문)

작성 2023.12.15분류 글주제 예술과 철학

“사람들 만나서 웃을 일이 있다는 거요”

삶의 낙이 뭐냐는 나의 질문에 그녀가 대답했다. 요즘에나 옛날에나 내가 이해 가지 않는 건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어떻게 그런 것들이 원동력이 될 수 있냐는 것이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은 반복된다.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이별도, 고통도 환희도. 그것들에서 오는 전류는 한 순간일뿐. 나 같은 사람은, 그러니까 그런 모든 것들에 쉽게 내성이 생겨 그것들을 반복하는 게 우스워 보이는 사람은 이 모든 것들이 무의미해 보인다. “어리석고 비참한 냉소주의자” 다.

어쩌면 알아선 안 될 것들에 너무 깊게 관여한 것은 아닐까 싶다. 나의 내면은 시간의 경계를 넘어 비정상적으로 나이 들었고, 일생을 끝마칠 때 즈음에나 느껴야 할 감정들을 관음하고 있다. 인생이 굴레 속에 있다는 모순을 직관적으로 바라볼 만큼 나의 지능이 높은 탓일까? 아니면 결핍된 애정이 낳은 괴물같은 속내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원래 어떤 젊은 이들은 회의적인 본성을 주체할 수 없는 것일까.

걔 중 어떤 것도 명쾌한 답이 되진 못한다. 사람들은 그것들에 익숙해지지 못하고 반복되는 삶에서도 무언가를 찾아내는 “능력”이 있을 뿐이고, 나는 그것이 결여된 장애인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이 내가 찾아낸 답이다. 그러나 삶을 더욱 희망적으로 만들지 못하는 철학은 무의미하다는 그의 말마따나 그렇다고 해서 비관의 늪에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 해서든 돌파구를 찾아내는 것만이 나를 구원하는 길이니까.

“영화 보는 거 좋아하시지 않아요?”

내가 그녀에게 그 얘기를 했었던가? 물론, 나는 영화 보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어느샌가 영화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있고, 영화 보는 일은 나에게 썩 도움되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영화를 보지 않게 됐다. 나는 모든 중독에 대해 강박적인 거부감을 느껴왔다. 그게 무엇이든 나를 중독시키는 것들은 끊어내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것의 반작용으로 나는 영화를 끊어야 한다는 압박을 느껴왔다.

[네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든 반드시 끊어내라. 모든 즐거움을 절제하는 것이 완전한 인간이 되는 길이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결과적으로 나는 무엇도 즐기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그야말로 “완전체”다. 나는 내가 즐거워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즐거움에 빠져 꼴사납게 꼬리를 흔들어 대는 내 모습은 바보같이 보였고, 이성적인 인간이라면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건 멍청한 일이라고 믿었다. 나는 결코 나의 행복을 두고 볼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인간이었던 셈이다.

우리 모두가 조금씩 술에 취해 있다면 조금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노르웨이의 한 심리학자의 말이 깊게 박혔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왜냐면 그건 진정한 해방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간 억눌려왔던 본성을 일깨워준다. 바로 억압에서 벗어나 온전한 인간성을 발휘하고 싶다는 본성. 도대체 우리는 왜 그래선 안 되며, 왜 그렇게 해야 하는 건가. 나는 왜 그래야 하는 걸까. 나는 술이 마시고 싶으면 마셔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땅이 새롭고, 하늘이 익숙해지는 감정을 느껴도 된다. 그렇게 날아올라 하늘로 추락하게 될지라도, 어떤 의미에서 나는 여전히 비상하고 있는 존재일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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