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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가 내 뺨을 때렸다.

작성 2023.12.06분류 글주제 인간과 삶

“모든 것에서의 집착과 욕심, 기대를 버리고 삶에 굴레를 벗어나서 완전한 초연함으로 현재와 현실에 충실하여 살아가는 것. 그것이 삶을 즐기는 것 그 자체다.”

나는 나의 하루를 습관화 하고 싶어서 이런저런 루틴들을 만들었다. 걔 중에는 꽤 오래전부터 하고 있는 습관이 있다. 아침에 나는 작업을 하기 위해 책상에 앉으면 어록카드를 2장 뽑는다. 어록카드는 내가 했던 생각들, 명언들, 좋은 구절 등을 모아서 카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 두 장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위 문장은 오늘 내가 뽑은 카드에 적혀있었다.

내가 가벼움에 대해 뭔가 안다고 생각할 때 쯤 삶이 조금씩 무거워졌다. 가벼움의 철학은 오랫동안 나의 숙제이자 해결해야 할 과제였는데, 가벼움은 삶에 베여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을 떠올리지 않을 수록 무거워지는 게 아이러니하다. 내가 삶에 집착한다는 것이 바로 무거워지고 있음의 증거다. 즉, 내가 더 나은 현재가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살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에 밀리의 서재 오디오북으로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듣기 시작했다. 조르바는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아가며 그가 노래하고 싶을 때 노래하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난다.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방해가 되는 손가락을 서슴없이 자르기도 한다. 만일 그가 “내일 이 손가락을 파이를 집어먹어야 하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했다면 감히 손가락을 자를 엄두를 낼 수 있었겠는가?

내가 풀지 못한 문제는 가벼움을 열정과 정열의 부재랑 혼동한다는 것이다. 자칫 끝없는 허무주의와 한량한 삶을 꿈꾸게 된다. 초연함을 가지고 현재에 충실한 삶이 어떻게 열정과 정열의 부재와 연결될 수 있는가 의심이 들 수 있지만, 이론을 실생활에 적용했을 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논리주의 오류에 따라 그런 일들은 자주 벌어진다.

그러니까 나는 집착하지 않는 초연함에 집중해서 현재와 현실을 충실히 살아가거나 삶을 즐기는 것은 등한시했다. 내가 만약 조르바에게 나의 삶을 들이밀며 “당신의 말대로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에게 뺨을 맞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드려면 당연하게도 더 나은 현재를 가꿔야 한다. 더 나은 미래는 그저 꿈꾼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다. 현재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현재를 불태웠나? 매 순간의 흐름을 느끼며 사랑하며 살고 있나? 두려움과 격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가? 어느 한 가지도 이루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며 스스로를 고통의 올가미로 묶어둔 채 그 주위만 서성거리고 있다. 바보같은 짓이다. 가장 집중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 “현재”다. 초연한 마음가짐은 그에 따라오는 부수적인 사상이다.

조르바는 크레타 섬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고, 거센 파도를 맞으며 아침 이슬을 싣고 도착했다. 그는 아름다운 크레타 섬을 바라보고 맘껏 음미했다. 그리고 그는 “홀짝거리며 열심히 커피를 마셨다. 그 모습을 보며 그가 삶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크레타 섬의 아름다움을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하는 지 고민하지 않았고, 내일의 배를 채울 음식, 오늘 밤 나를 보살펴줄 이불을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대신 빵에 버터와 꿀을 발라 먹으며 커피를 홀짝였다. 그게 그가 삶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현재에 충실하고, 현재를 살며, 현재를 사랑하는 것이 비로소 삶을 즐기는 방법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 외엔 다른 어떤 것도 걱정하지 말고 생각도 하지 마라. 미친듯이 먹고, 미친듯이 일하고, 미친듯이 자고, 미친듯이 섹스하고, 미친듯이 사랑하자. 현재를 정열적으로 불태우자.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 거야? 그래. 하나 씩 시작하자.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집중하기. 그렇게 하기 위해 오늘을 계획할 것이다. 짜여진 대로 움직이고 나를 통제하자. 내가 나의 관리자가 되어서 수행하는 나는 행동하기만 하면 되는 존재로 남을 수 있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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