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론 : 자유의 제한과 개념
나는 모두가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에겐 사상과 행동의 자유가 있다. 이 자유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가장 존중되어야 할 가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엔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개개인의 자유의 행사가 서로 상충하지 않고,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존중되어야 할 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며, 만약 내 자유의 행사가 타인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면 그건 제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인간의 생활에서 100% 독립적인 행동이 있을까? 인간은 아주 복잡한 사회와 촘촘한 연결망을 갖고 있다. 내가 무슨 행동을 하든 직간접적으로 제 3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기준은 어떻게 세워야 할까? 나는 자유를 중요시하는 만큼 자유의 제한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한은 0과 같고, 마찬가지로 무한한 자유는 완전히 억압된 상태와 같기 때문이다.
첫 번째 기준은 당연히 법적 고려사항이다. 그 행위가 위법하다면 그건 마땅히 제한되어야 한다. 그 법이 올바른가에 대한 논의는 개인의 단계에서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담배꽁초를 길에 버리는 것은 명백히 불법이다. 만약 어떤 흡연자가 “그건 완전히 악법이야. 난 인정하지 않겠어.”라 말하며 자신의 자유를 존중해달라 주장한다면 납득할 수 있는가? 모든 법에는 그것이 가결된 이유가 있다. 적어도 사회혁명을 바라는 아나키스트가 아닌 이상 우린 집단의 규범을 지킬 필요가 있다.
말이 나온 김에 두 번째는 집단의 규범이다. 예를 들면 도서관에서 떠들면 안 된다는 규칙은 법적인 강제사항은 아니지만 우리 집단이 공유하는 공통의 규범이다. 이 규범이라는 게 참 애매한데 대부분 느낌에 의존하는 것이 많다.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회인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규칙들이다. 일반적인 상식을 가지지 못한 이들에겐 납득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납득하지 않는다고 규범 자체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그들이 지키든 안 지키든 규범이 있고, 그 규범 하에서 그들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
세 번째는 타인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는 행위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서로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다. 이는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사실이다. 설령 내가 무인도에 간다해도, 누군가는 나를 그리워하고, 슬퍼할 것을 생각하면 지구의 인류를 전부 없애지 않는 한 완전한 독립성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상호 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나의 행동이 불가피하게 상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들면 도서관에서 옆 자리에 앉은 흡연자가 담배를 피고오면 냄새가 난다. 나는 그 냄새가 싫지만 그에게 담배를 피지 말라고 강제하거나, 담배 냄새를 빼고 들어오라고 강요할 수 없다. (게임처럼 아예 실행불가능 하다는 말이 아니라 나 스스로 그럴 권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그 냄새가 싫고, 그에게 권유는 할 수 있지만 그가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가 냄새를 빼고 들어왔으면 정말 좋았겠지만 그건 그의 선택이며, 그의 자유다.
만약 자유의 제한을 그저 피해의 유무라고 느슨하게 정의한다면 우린 아무것도 행동할 수 없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나의 행동은 無에 가깝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정수준의 피해는 감수해야 한다. 만약 그게 싫으면 내가 자리를 옮기거나 집에서 공부하면 된다. 도서관에 왔다는 것은 타인으로부터의 피해를 감수하겠다는 일종의 합의가 바탕으로 된 것이다.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피해를 받지만 나도 상대에게 피해를 주고, 그런 관계 속에서 살아가겠다는 사회적 합의가 바탕이 된 것이다.
정리하자면 서로의 자유가 상충되는 것은 불가피하며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나의 자유를 수행하기 위해 타인의 자유를 적극적이고 의도적으로 제한하는 행위는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단지 공익이라는 이유 (담배 냄새가 해롭다 등)로 제한하기에는 훨씬 더 복잡한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제한사항을 고려한 자유의 행사는 존중되어야 한다. 자유의 존중은 여러 오해를 낳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통념보단 훨씬 엄격하고 어려운 개념이다.
[상대의 자유 존중하기]
나는 여자친구의 자유를 존중한다. 그녀는 언제든지 내게 마음이 떠날 수 있고, 다른 남자와 눈이 맞을 수도 있다. 그건 그녀의 자유다. “넌 그럴 수 없어”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자유의 제한은 집착으로 이어진다. 그녀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종종 오해하는 건 이런 나의 생각이 “그래도 돼”, 라거나 “그래도 상관없어.”라고 곡해해서 해석한다. 당연히 그러면 마음이 아프지만 그것이 그녀의 자유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니 꼭 그래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나는 그것을 존중하고 놓아주겠다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내가 어떤 여성에게 대시를 하고 싶은데 그녀가 남자친구가 있는 것 같은 뉘앙스를 풍겨서 대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그녀의 자유를 100% 존중한 것은 아니다. 자유라는 건 선택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그녀에겐 내 대시를 거부할 선택지가 없었으니 (애초에 대시를 하지 않았으니) 그녀의 자유가 존중되진 않았다. (제한된 건 아니더라도) 그녀가 나의 대시를 받아들이든, 거절하든 그것은 그녀의 자유이고, 그것을 내 선에서 결정하는 것은 존중의 태도가 아니다.
또한 그녀의 입장에서도 자기가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이 절대 자신에게 대시해선 안 된다는 강제성으로 작용해선 안 된다. 그녀에게 대시를 하는 건 나의 자유다. 그녀가 기분 좋아하든, 나빠하든, 승낙하든, 거절하든 그건 그녀의 자유지만 “넌 그래선 안돼”나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는 태도는 지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자유와 책임]
자유라는 건 책임이 따라온다. 내가 책임지지도 않을 거면서 자유를 운운해선 안 된다. 요즘에는 어른들의 조언을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 그런 얘기 하지도 마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 말이 정말 터무니 없다고 생각한다. 결정은 자기가 하는 거고, 책임은 내가 져야 하는 건데 그걸 조언해준 사람이 왜 책임을 지는가? 그 사람에겐 그걸 말할 자유가 있다. 그리고 상대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말은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그만한 자유가 있다는 뜻이다. 나는 그 사람의 말을 따르거나, 따르지 않을 자유가 있다. 그리고 따르기로 했다면 그건 그 사람의 말이 가진 강제성이 아닌 내 의지에 따른 자유의 행사다. 그러니 당연히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
우리는 각자가 원하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 우리 모두에겐 자유가 있다. 너에게 자유가 있다는 말은 나에게도 자유가 있다는 뜻이다. 네가 나에게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나도 “그래도 난 그렇게 할 거야.”라고 말할 자유가 있다. 이 둘은 똑같이 존중되어야 한다.
이건 삶을 대하는 태도다. 내가 예시로 든 상황이 다소 극단적일 수는 있지만 나는 삶에 철학을 가지고 일정한 태도를 견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말했듯이 내가 생각하는 자유의 개념은 사회적 통념과 상충되는 부분도 있다. 사람들은 은연중에 본인의 자유가 우선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나는 우선 상대의 자유를 존중하고, 그것과 동일하게 나의 자유를 추구하려 한다. 물론 내가 자유롭기 위해 상대에게 지나치게 많은 양의 자유를 준 것일 수도 있다.
계속 주장했듯이 상대가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동의하든 안 하든 나는 내가 생각하는 자유론에 따라 행동할 자유가 있다. 그것이 싫다면 나를 보지 않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