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때만
해사를 나오려고 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엄마는 내게 “5년이든 10년이든 임관은 하고 일을 하다가 나와라”라고 말했다. 그녀는 당신이 인생을 살아보니 그게 맞다고 말했다.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 시간이 낭비되는 게 아깝다.’ ‘거기서 다른 준비를 하기 어렵다.’ ‘그 나이가 되면 도전하기 무서워질 것이다.’ ‘나는 지금 하고 싶은 걸 하고 싶다.’ 라는 이유였다.
군대에서의 6개월을 빼고 기간으로만 치면 2월에 나왔으니 해사를 나온 지 약 1년 정도 됐다. 1년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사람을 만나, 많은 감정을 느끼고, 많은 생각을 했다. 지난 1년이 전혀 아깝지 않다. 그러나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다르듯,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구석이라곤 없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지금의 나는 어떻게 생각할까?
해사에서 나는 평범하게 공부하고, 평범하게 대학다니고, 평범하게 취직하여 꿈 없이 사는 대한민국의 청년들에게 연민을 느꼈다. 연민이라기 보단 선민의식일까? “저건 잘못됐다. 저것은 올바른 삶이 아니다. 삶은 그런 게 아니다.” 라고 말해왔다. 그런 마음으로 살았다.
‘나는 특별하고, 난 하고 싶은 걸 위해 가진 걸 포기했으니 성공할 것이다. 삶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 난 저들과 다르다.’
그런데 내 예상과 달리 내가 사회에서 만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목표와 꿈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목표를 위해 현실적인 계획을 세우고, 꿈을 향해 노력하고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그들은 분명 맥아리 없는 동태눈깔로 노예처럼 살아야 하는데, 실제로 만나본 그들은 열정과 꿈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순간 나를 돌아보니 꿈과 열정이 없는 건 나였다.
대부분의 청년들은 대학을 나와 취업을 한다. 일을 하며 돈을 벌고, 경험을 쌓고, 새로운 것을 배운다. 그리고 30대 쯤 퇴사를 해, 다른 일을 시도한다. 자신의 일과 관계없는 일을. 그래도 된다. 사업을 준비해보니 오히려 경험이 없고, 나이가 어린 게 큰 걸림돌이다. 잠깐만. 해사를 졸업해 장교가 되어 10년간 복무하고 전혀 관련없는 일을 하는 삶과 무엇이 다른 거지? 혼란스러웠다. 내가 틀렸고, 정말로 멍청한 선택을 한 것일까?
“삶이란 게 그런거지.” “인생은 원래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거지.” “어떻게든 되겠지.”
내가 습관처럼 하는 말들이다. 나는 모든 것에 때가 있다고 믿는다. 썸일 땐 썸일 때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있고, 연애 초반에는 연애 초반에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마찬가지로 20대에는 20대에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취업준비를 하고 그런 것들이 자신의 인생의 모든 것이라 느끼고, 갈팡질팡하고, 혼란스럽고, 불안하고, 메스꺼운 것들 그런 것들도 20대에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잘못이 없다. 그들은 잘못되지 않았다. 그냥 그때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있을 뿐이다. 정해진 삶의 방식이 없다는 것을 더 깊게 이해한 것 같다. 특별하게 살아도 되는 만큼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도 괜찮다.
그렇다면 나는 어찌하겠는가? 남들과 다른 길을 걸어왔는데, 남들이랑 같은 곳으로 가겠다고 하는 건 정말이지 멍청한 발상이다. 좋든 싫든 남들과 다른 곳을 보고 달려갈 수 밖에 없다. 그들과 나는 코스부터가 다르니까. 더욱이 나는 일반적인 삶을 꿈꾸지도 않는다.
내가 얼마를 모으든 어차피 사업을 준비하는데 큰 도움이 안 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저 생활비 정도로 쓸 수 있겠지. 스타트업이란 건 투자를 받느냐, 못 받느냐의 싸움이다. 회사를 다녀서 모은 2천 3천으로 사업을 한다? 없는 것보단 낫지만 큰 차이는 아니다. 그렇단 말은 10년 뒤에 하든 지금 하든 어차피 출발선이 비슷하다. 그렇다면 20대 때만 할 수 있는 것 중 내가 해야 하는 건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요리보고 조리봐도 도전이다. 장교생활, 일반 직장생활 등 노선을 타지 않은 나는 시간을 이렇게 낭비하고 있어선 안된다. 20대 때만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은가. 매일 반복되는 지금의 삶이 20대 때만 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다. 30대 40대 때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지금 하던 걸 다 접고 뭘 하겠다 이런 건 아니다. 다만 앞으로 내가 걸어가야 할 방향은 20대 때만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때론 비범한 것들은 지극히 단순한 것들이니까. 누워서 릴스보기? 80대도 할 수 있다. 그딴 건 집어치워라. 조금 더 넓게 생각하자. 난 뭘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