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에 대한 고찰
우리의 세상은 이론을 통해 해석된다. 사물의 이치나 지식 따위를 해명하기 위하여 논리적으로 정연하게 일반화한 명제의 체계인 이론은 한낱 가설이다. 세상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인간의 시각으로 이해가능한 것들을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이론이 가치가 없느냐? 그건 절대 아니다. 사실과 현상에서 이론이라는 가치를 추출해내는 것이 인간이자 천재성이다.
이론은 마치 사실처럼 간주된다.
"2, 3, 5, 7 같은 소수들이 어떤 패턴을 지니고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리만가설은. 클레이 수학연구소가 수학분야 7대 난제 중 하나로 정한 미해결 문제이다. 리만가설은 소수정리를 증명하기 위한 전초전으로 이해되었으나 뜻밖에도 소수정리가 리만가설보다 먼저, 그것도 훨씬 간단한 방법으로, 정의되어 리만가설은 공중에 뜬 상태가 되었다.
아직 그 누구도 리만가설을 증명하지 못했으나 수많은 수학자들은 리만가설이 맞다는 전제로 다양한 이론들을 제시했다. 만약 리만가설이 틀렸다는 것이 밝혀지면 수학계에서 그 파장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리만가설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다. 이제 리만가설은 믿음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리만가설이 사실이라고 믿을 것인가?’
이론은 믿음이다.
유진 위그너는 그의 에세이에서 인간이 발견한 우주의 물리법칙이 모두 제곱의 함수로 설명되는 등 어째서 수학적 구조와 부합하는지 의문을 가졌다. 이와같은 “수학은 인간의 도구 그 무엇을 넘어 세계의 본질을 담고있는 이데아다.” 라고 주장하는 직관주의 혹은 플라톤 주의와 대비되어 “수학은 단지 세상을 인간의 시각을 해석하기 위한 체계에 불과하다.”라 말하는 형식주의는 인간이 설명해놓은 수학의 구조는 단지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 끼워맞춘 것 뿐이라고 주장한다.
20세기 초까진 인간의 사칙연산으로 설명되는 물리법칙만 존재했다. 그러나 양자역학이 등장한 이후로 2x3이 3x2와 같지 않다라는 이전의 직관과 부합하지 않은 수학이 필요해졌다. 따라서 인간은 양자역학에 맞는 수학체계를 만들었고 이를 발견이라 칭했다. 하물며 우주의 진리를 담고있다고 여겨지는 수학도 이러한데 우리의 삶은 어떨까. 나는 나의 인생에서 깨달은 사실과 경험한 현상들을 아우르는 이론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론은 단지 하나의 믿음에 불과하다. 언제든지 깨지고 부서질 수 있다. 하지만 결코 이론이 부재하는 상황은 있을 수 없다. 인간에겐 그게 어떤 종류이든 믿음이 필요하다. 나는 어떤 것을 믿을 것인가. 그건 내가 결정한다.
왜 이론을 만드는가?
나는 이론을 만드는 과정을 이론화라 칭했다. 뇌과학에선 이를 정교화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새로이 얻은 정보를 자신만의 언어로 치환하는 과정에서 학습이 발생한다. 부호화, 구조형성 등과 같이 정교화는 엄연한 뇌학습 프로세스의 일부다.
또한 비효율적인 학습자는 개별사례를 중심으로 기억한다. 가장 효과적인 학습법은 개별사례에서 차이점과 공통점을 분석하고 그 상위의 근본원칙을 도출해내는 규칙학습을 하는 것이다. 사례학습은 새로운 사례가 등장 할 경우 응용이 어렵다. 주입식 교육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공식을 아무리 외우고 문제를 아무리 풀어봤자 내가 풀어 본 유형의 문제가 아니면 손도 대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
이론화는 근본원칙을 찾는 과정이다. 좁은 유형의 집중적 사고가 아니라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사고를 해야한다. 단순히 수학문제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친 일이다. 우리는 누구나 평생학습자다. 안병욱 교수는 생즉학을 말한다. 그는 배우는 즐거움이 인생의 정수 중 하나라 칭했다.
어떤 것이 인정받는가?
새로운 이론은 이전 이론의 내용을 포괄하고 동시에 발전적이여야 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등이 기존의 상식과 질서를 깨면서도 인정받는 이론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이전의 모든 이론들을 포괄하면서 동시에 과거 이론들이 설명할 수 없었던 부분을 채웠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아인슈타인에 동의하지 않아 그가 틀렸음을 증명하는 그럴듯한 새로운 이론을 발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과거의 이론, 법칙들과 충돌할 것이다. 시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정의했을 지라도 F=MA라는 뉴턴의 고전역학을 끌어안을 수 없다면 해당 이론은 인정받지 못한다.
어떤 이론을 제시해야 하는가?
내가 해왔던 생각들 중 서로 부딪혀 충돌하는 것들이 여러 개 있다. 나는 이 괴리를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다. 무언가 모순되었지만 그런대로 살아진다. 이 충돌을 무시하면서 살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난 스스로에게 위선을 느끼고, 언제나 양가감정을 느끼면서 고통받을 것이다. 법칙처럼 여겨지는 이론도 있다. 가벼움이 그런 것이다.
나는 앞선 이론들의 모순을 해결하면서도 기존의 법칙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미해결 과제가 무엇인지, 어떤 이론이 무엇과 충돌하는지, 일상생활에서 겪는 괴리 중 이론화 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많이 읽고, 많이 느껴라.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실감해라. 모르는 것은 기회로 여기고 집중해서 관찰하라. 아는 것은 정말로 아는 것인지 주의하며 더 집중해서 관찰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