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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남 2) 당연하지 않음

작성 2022.07.14분류 글주제 인간과 삶

친구에게 내 생각이나 노션에 썼던 글에 대해 이야기해주면 감탄한다. 책이나 인스타, 유튜브에서 봤던 성공한 사람들의 마인드와 생각을 내가 그대로 갖고 있고 행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반에 나를 의심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아무래도 내가 멍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간혹가다 사람들에게 내 사상에 대해 이야기하면 설득될 때도 있었지만 많은 경우 갸우뚱하거나 반박했다. 그들은 합리성을 중요시했는데, 내가 보기엔 그닥 합리적이지 않았다.

나에 대한 친구의 인식이 확실하게 달라지게 된 전환점은 국립현대미술관에 갔을 때로 추정된다. 우리는 같은 전시를 보았다. 전시회에 가보면 알겠지만 대부분 인스타 사진을 찍으러온 여자나 커플들이 주를 이룬다. 우리는 그런 데에는 취미가 없으니 각자 관람을 하고 만났다. 전시회를 나와 카페를 간 우리는 전시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그는 전시가 잘 이해가 안 된다며 자신이 생각한 바를 말했다.

그의 말을 다 듣고 같은 전시를 본 게 맞는 건가 할 정도로 우리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해한 내용이 다른 게 아니라 이해의 깊이가 달랐다. 난 내가 느낀 바를 말해줬다. 그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는 나에게 천재가 아니냐고 말했다. 나는 내가 이 전시에서 보고 느낀 것들이 다른 사람들은 느끼지 못했을 거란 걸 안다.

나는 인스타에 전시나 독서에 관한 글들을 종종 올렸는데 그 글만 본 사람들은 내가 뭘 보고 그렇게 느꼈는지 와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전시를 실제로 보고 온 사람은 아마 그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리란 걸 알고있다. 그는 그 후로 내가 하는 말을 달리 듣는 것처럼 보였다. 내 얘기를 듣고 그의 생각을 바꾸기도 하고, 모르는 걸 내게 질문하기도 한다.

어제밤 그는 나에게 과외를 해달라고 했다. 그의 직장 프로젝트 진행 중 걸리는 점이 있는데 내 의견이 궁금하다고 했다. 요약하자면 자신은 어떤 장표를 넣고 싶은데 선배는 빼는 게 낫다고 했고, 자신은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했다. 나 역시 선배와 의견이 같았고 그는 납득을 못 했다. 난 글쓰기를 예로 들며 아무리 좋은 문장이고 단락이라도 전체 맥락과 벗어났다면 오히려 몰입도를 해치기에 제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이 중요한 부분인지 잘 캐치를 못하는 것 같다며 자신에게 독해하는 법을 알려 달라고 했다. 우리는 옆에 있던 “역사란 무엇인가”를 펼쳐 아무 단락이나 고르고 독해한 후 핵심을 요약해보기로 했다. 이 책은 이해하기 어려운 책으로 유명하기에 핵심을 찾기가 쉽진 않았다.

그는 핵심을 못 찾겠다고 말했고 난 내 생각을 말해줬다. 그러자 그는 어떻게 그런 결론이 도출됐는지 설명을 요구했다. 나는 문장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그에게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됐는지 설명했다. 나는 독해에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제거하고, 중요한 부분을 집중하며 같은 것과 다른 것을 분류하고 저자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분석했다. 그런데 내가 느낀점은 내가 이 글을 읽을 때 실제로 그렇게 하나하나 따져가며 읽은 게 아니라 그냥 읽고 이해하고 해석했다는 것이다. 역으로 내가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분석하니까 나도 놀랐다.

요지는 사고과정이 의식적인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아주 순식간에 이루어진다는 점이고, 그런 사고과정이 남들에 비해 상당히 복잡하고 심오한 거였다는 걸 알게됐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나한테는 너무 당연하고 숨쉬듯이 되는데 남들은 그게 아니었다는 말이다.

한 때 내가 심각하게 계획에 집착했을 때 친구가 내게 어떻게 그런 계획을 세우느냐고, 피곤하지 않냐고 물어봤다. 나는 이해가 안 갔다. 그냥 그걸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 즉시 시작부터 끝까지 계획의 아웃라인이 잡혀서 나왔다. 작문 수업에서 교수님이 내 글을 읽고 너무 잘 썼다며 자신이 교수로 있는 일반대학 수업에서 보여줘도 되냐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수업은 글쓰기 전 개요를 잡는 법을 알려주고 실제로 글을 써보는 시간이었다. 당시 난 이해가 안됐다. 개요를 왜 적어야하지? 그냥 주제가 잡히면 이미 머릿속에서 개요가 펼쳐졌다. 글쓰기 같은 고도의 집중이 필요한 작업에서 이러한 자동 작용은 에너지를 많이 쓰긴 한다. 그래서 요즘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손가락 가는 대로 글을 쓴다.

나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음을 알았다. 당연한 걸 당연하게 넘어가면 거기서 끝이다. 당연한 걸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였을 때 변화가 시작된다. 난 이런 현상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당연한 일이니 더 개발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되니 접근하는 시각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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