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남 1) 학자가 될 상
대중들은 그보다 잘난 사람을 인정할 아량이 없다. 겸손은 미덕이다. 내가 타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나에게 전혀 이로울 게 없다. 내가 다르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알려준다고 하여 내가 더 특별해지는 게 아니다. 내가 특별하다면 이미 그 자체로 특별하다.
이 글을 적는 이유는 내 생각을 정리할 공간이 필요할 뿐이지 자아도취에 빠지거나 선민의식을 갖기 위함이 아니다. 단지 내가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이유로 그것을 인정하길 거부해야만 하는 것은 부당하다. 난 오히려 나를 인정하고 그것을 활용해 더 높은 단계로 진입하고 싶을 뿐이다. 이 사실이 내가 그들보다 우월하다거나 더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결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난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려 한다.
나는 돌잡이에서 연필을 잡았다. 어른들은 내게 항상 학자가 될 상이라고 말했다. 나는 또래보다 훨씬 얌전했고, 책 읽는 걸 좋아했다. 어릴 적 한글도 모르는데 이순신 장군에 대한 책을 계속 봤다. 내 기억이 많이 왜곡되었겠지만 이순신 장군 책을 계속 보다보니 어느순간 글을 읽게 됐다. 한글을 따로 배운 기억은 없다. 나는 그 후로 책을 참 많이 읽었다. 지금처럼 분석을 한다거나 뭔가를 적지도 않았고 그냥 닥치는 대로 읽었다. 만화책도 참 많이 봤다. 그런데 신기하게 그렇게 한 번 본 책들의 내용은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따로 기억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기억이 났다.
초등학교 4학년 땐 독서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던 선생님을 만나 1년에 100권의 독후감을 썼다. 중학교에 가서 전학을 온 탓에 친구가 없으니 도서관에서 살았다. 하루종일 책만 봤다. 그땐 삼국지에 빠졌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운명의 책이었던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읽었고, 친구의 추천으로 읽었던 고전 ‘거미여왕의 키스’를 계기로 고전문학을 읽게 됐다. (그 전에는 교양서만 읽었다.)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약 20년이 걸렸다. 그리고 이건 다른 게 아니라 뛰어난 것임을 인지하게 되는 것은 그 후로 4년이 걸렸다. 맞다. 모두가 저마다 특별하다. 하지만 그 역량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고, 잠재력과 활용도, 유용성은 천차만별이다. 누군가는 세상에서 코딱지를 가장 잘 파는 능력을 지녔을 지 모른다. 다만 이 시대에서 그닥 효용이 없을 뿐이다.
내가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된 계기는 사회에 나오고 나서다. 이미 그 해사에서부터 어느정도 느낌은 받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냐고 나에게 질문하면 난 속으로 ‘왜 못하지?’라고 생각했다. 내가 대단한게 아니라 그저 그들이 의지가 없고, 여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사회에 나오고 정말 여러 사람들을 봤다. 난 천재를 찾고 싶었다. 그러나 천재는 기록에만 있었다. 아직 내 경험의 한계로 인한 것이겠지만 내가 실제로 본 사람 중 천재는 없었다.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자 하고, 빨리 이해하고, 빨리 습득하고, 잘 따라한다. 그 뿐이다. 난 이것이 정말 별 볼일 없는 능력인 줄 알았다. 누구나 나처럼하면 나 같은 생각을 하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구나 이런 능력을 갖지 못하고 가졌다해도 같은 단계에 도달하지 못 함을 알게됐다.
어디서부터 차이가 생긴 건지 모르겠다. 왜 이런 기질이 나타났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냥 했을 뿐이고 어떻게 했냐고 물어보면 대답은 “그냥 그렇게 된다.”이다. 어떻게 그런 걸 기억하냐 물어보면 “그냥 기억이 난다.” 그걸 어떻게 그렇게 해석했냐 물어보면 “그냥 그렇게 해석이 된다.” 한마디로 나조차도 설명이 안되니 남에게 가르쳐줄 수가 없다. 애석하게도 내가 남들보다 뛰어나지만 구체적으로 뭐가 뛰어난 지 알 수가 없다. 나에겐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사고 과정이 남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얼마전 학자가 될 상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유튜브에서 교수들이 이야기 하는 영상을 자주 보는데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연구하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글을 쓰는 것이 부러웠다. 교수들이 쓴 칼럼을 읽어보면 사실 대단한 지식은 필요없다. 그들이 교수기에 일반인보다 더 많이 알고 있기에 칼럼을 쓸 수 있다. 똑같은 내용을 내가 썼다면 아무도 안 읽었을 것이다.
어쩌면 난 그들의 말대로 학자가 되어야 했을 수도 있다. 아직 배움에 대한 열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먹물보단 운동화를 선택했다.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학자와 행동가. 북 스마트와 스트릿 스마트다. 나는 스트릿 스마트를 택했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되고 싶기에 아직은 이 길을 걷는다. 그러나 학자가 된 내 모습은 어떨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