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하다 (2)
국어사전에 의하면 고전의 뜻은 “예로부터 전하여 내려오는 가치 있고 훌륭한 문학”이다. 고전이라는 장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문학 중에서 가치있고 훌륭하다고 일컬어지는 것들이 고전에 속한다. 고전소설을 가르는 위원회라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전이라고 판명된 소설은 누가 봐도 고전인 경우가 많다.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학문이다. 문학은 인간에 관한것이며, 인간의 역사, 사상, 심리, 선과 악, 고뇌, 고통과 쾌락, 흥망성쇠를 다룬다. 그 중에서도 고전은 대문호라 불릴 만한 인간 역사 속 위대한 철학자이자 이야기꾼들이 엮어낸 인간의 정수다. 즉, 인간의 가치가 이 고전소설들에 담겨져있다. 만약 외계문명과 조우하여 인간이 어떤 존재냐를 설명하고자 한다면 민음사 전집을 건네주면 될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며 결국 모든 것이 사람을 위함이다. 국가의 권력도, 기업의 존재도, 종교와 돈, 과학의 진보, SNS, 유튜브, 문화, 스포츠, 전쟁 등 인간의 행위는 그 모든 것이 본질적으로 사람을 위해서 행하는 것이다. 그 목적이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 의미없다. 만약 지구 상에 단 한 사람만 존재했으면 앞서 언급한 모든 것들이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에서 사람은 종종 등한시된다. 유발 하라리의 표현에 의하면 허구를 믿는 능력이 인간 집단의 크기를 기하급수적으로 성장시켰지만, 우리는 그 허구에 감정이입을 하게 됐다. 기업이 도산하면 그 기업에서 일하고 있던 사람이 아닌 기업을 걱정한다. 사람들은 허구를 만들고 믿는 것을 넘어 허구에 감정을 이입하고,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인간은 뒷전이 됐다. 인간성이란 것은 허구에 의해 갈취당하고 자취를 감춰간다. 인간의 그림자는 과학이 발전하고 사회가 진보할수록 옅어지고, 문명의 그 거대한 탐욕에 압도당하고 만다. 고전은 인간성을 배제해가는 역사의 돌풍에서 무엇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가를 유지하려는 몸부림이다. 그 어떠한 학문과 과학, 종교, 연구, 성장도 인간을 소외한 채로 나아가선 안 되며, 그럴 수 없다.
요즘과 같은 무한 자기개발 시대에선 인문학을 경시하고, 문학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흔하다. 문이과를 나누는 것도 웃기지만 문과의 희망이었던 공무원의 불씨도 쇠퇴하고, 그나마 경영학이란 사회과학으로 버티고 있다. 하지만 이도 얼마남지 않았다. 경영학은 필수다. 문과 10명 중 취업에 성공하는 7~8명이 경영학과 혹은 경영학 부전공이다. 모두가 경영학을 배운다는 것은 더이상 단일 학문으로서의 가치가 사라진다는 의미이다. 모두가 경영학을 하니 경영학을 따로 배울 필요가 점점 없어지는 것이다.
얼마전 친구들과 만나 철학과가 유지될 수 있는 가에 대해 토론했다. 나는 오히려 철학과가 남고 현재 메이저한 과가 쇠퇴할 것이라 생각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을 기본으로 상정한다면, 모두가 할 줄 안다는 것은 메리트가 없음을 의미한다. 모두가 코딩을 하고 개발을 할 줄 알면 더이상 개발자가 필요가 없다. 그냥 아무나 뽑아서 개발하면 된다. 이전에는 고되고 박봉인 개발자를 쳐다도 안 보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초과수요 상태다. 이런 현상은 절대 평생 유지되지 않는다. 아주 간단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다. 오히려 현재 비주류학과가 그 정통성을 유지하고 존재 이유를 증명하기 쉽다. 철학의 황금기 고대 그리스같은 시대가 도래한다면 사실상 철학자라는 표현이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모두가 철학을 하면 철학자가 도대체 왜 필요하겠는가.
지금이야 말로 인문학이 중요한 시대다. 인문학이 가장 경시되는 이 시기가 인문학을 배우고 익혀야할 적기다. 다시 강조하자면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다. 모두가 해당 주식을 산다는 건 나는 그 주식을 사면 안 된다는 말이다. 코스툴라니가 말하지 않았는가 천재가 되고 싶다면 바보들이 하는 것과 반대로 하면 된다.
인문학에서 얻을 수 있는 사고와 통찰력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큰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이종학문간 융학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종합적 사고력은 인문학을 통해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학은 단언컨데 가장 효과적인 인문학 학습 툴이다. 그 속엔 역사, 철학, 윤리 등 인간의 모든 것이 총망라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