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론 2) 우연, 확률, 인과
“인생에 플롯은 없다. 인과를 가장한 우연만 존재할 뿐이다. “
인과라는 것이 존재하는 지 의문이다. ‘삶의 완결성’에 적은 이 문장에서 이러한 고민이 시작됐다. 인과의 수준을 어느정도로 계산하느냐에 따라 원인이 달라진다. 첫 번쨰 들었던 질문은 우연과 확률이 어떻게 다른지이다. 우연과 확률의 차이가 무엇일까
예를 들어보자 제주 4.3사건의 시작을 요즘은 4월 3일이 아니라 1947년 3월 1일로 간주한다. 3.1절 집회가 한창이던 제주도에서 시가 행진을 구경하던 어린아이가 기마경찰에게 치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기마경찰이 그대로 가려고 하자 일부 군중이 돌멩이를 던지며 쫓아갔고, 이를 경찰서 습격으로 오인한 경찰이 군중에게 총을 발포하여 6명이 사망하고 6명이 중상을 입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한다. 나는 이 말에 의문이 든다. 왜 만약이 없을까? 그렇다면 역사가 필연이란 말인가? 역사가 과학처럼 원인과 결과가 명확한 하나의 현상이라는 것인가? 합리주의의 과학적 사고는 분명 어두웠던 방에 킨 촛불이 되어 세상의 이해하는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사회과학도 이를 채용해 사회과학 방법론이 등장했고 수많은 학문적 진보를 이뤘음은 부정할 수 없다. 과학적 사고의 만능론은 모든 학문에 과학적 연구의 철학을 대입한다. 역사는 인문학이다. 과연 어떠한 역사적 사건에 증명가능한 원인이 존재할 수 있을까?
만약 기마경찰이 아이에게 사과했다면? 만약 군중이 돌멩이를 던지고 쫒아가지 않았다면? 만약 경찰이 군중에게 총을 발포하지 않았다면? 아니 더 나아가 기마경찰이 태어나지 않았으면? 대한민국이 독립을 못했으면? 인류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지구가 없었다면? 제주 4.3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모든 사건의 원인은 빅뱅으로 돌아간다. 빅뱅이 없었으면 어떠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논리는 허무주의에 빠진다. 더 이상의 논의는 의미가 없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음이다. 역사에서 과학적 사고에 의한 인과를 주장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내 지식수준에선 인과로 빠지는 쪽은 앞선 빅뱅논리에 의해 막히게 된다. 나는 우연을 믿는다. 세계는 우연에 의해 움직인다.
하지만 인과적 사고는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다. 우리는 이미 과학적 사고에 절여진데다가 원인과 결과가 명확한 설명이 더욱 설득력있다. “그건 단지 우연에 불과하다”라는 주장이 크게 설득력을 얻기는 어렵다. 현실 사회는 실제보다 믿음에 의해 좌우된다. 아주 흔히 그 예시를 찾을 수 있다. 바로 주식이다. 그 회사의 실제 가치보다 사람들이 믿는 회사의 가치가 주식으로 반영되고 거래된다. “실제 그런 것보다 그런 것처럼 보이는 게 중요하다”는 나의 주장은 이런 맥락에서 등장했다.
인간은 믿음을 필요로 한다. 그들이 믿을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해야 한다. 그게 국가든, 화폐든, 신이든 자본주의가 소비를 필요로 하듯, 인간이라는 종은 믿음이 있어야 응집될 수 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이를 허구를 믿는 능력이라 칭했다.
‘우연’은 이를테면 감당할 수 없는 환상이다. 너무 불명확하고 애매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확률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확률과 우연은 전혀 다를바가 없다. “50%의 확률로 발생한다” 는 “결국 우연에 의해 발생한다.”와 똑같다. 다만 수치와 수학에 의해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줄뿐이다. 확률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 믿음에 사회가 작동한다. 확률이라는 믿음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발전시켰는지 보라.
이와 관련된 인식은 우연 → 확률 → 인과 순으로 변화했다. 우연은 믿을 수 없다. 따라서 확률이 등장했다. 높은 확률을 가진 현상은 인과로 설명된다. 하지만 0.9999…순환소수와 1은 엄연히 다르다. 나는 확률은 인정한다. 하지만 인과는 다른 차원이다. 이전 글에서 주장했듯, 인과라는 허상이 우리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인과는 삶의 완결성과 연결된다. 인과적 사고가 인문학 - 역사, 철학 등 인간에 관한 학문, 그리고 우리의 실제적인 삶까지도 - 에 적용되어 생기는 문제다.
정리
- 세상은 우연에 의해 움직인다. (적어도 인문학에선 그러하다. 인문학은 문사철 → 우리 삶과 연계된 문제다.)
- 사람들은 불확실성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 따라서 확률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 높은 확률을 가지는 현상들에 인과라는 개념을 입혔다.
- 인과적 사고는 자연-사회 과학에선 분명 큰 진보를 이뤘다. 하지만 모든 영역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인과적 사고가 우리 삶을 장악했다. 인과적이지 않은 삶을 인과적으로 해석하려 하니 괴리와 모순이 발생하고 삶의 완결성이라는 족쇄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다.
- 확률과 인과는 엄연히 다르다. 0.9999…순환소수가 1과 다르듯이.
- 우연-확률-인과가 스펙트럼이라면 인문에서 확률은 우연쪽에 가깝다. 즉 삶에서 0.9999같은 확률은 아주 희박하다.
- 인생에 플롯은 없다. 인과를 가장한 우연만 존재할 뿐이다.
*참고: [역사란 무엇인가] - E. H. 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