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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 속 세상

작성 2022.07.05분류 글주제 인간과 삶

경험은 결코 상상보다 좋을 수 없다. 현실이 기대를 뛰어넘기 어렵다는 말처럼 전세계 어디를 여행하여도 어린아이가 우표를 수집하며 그린 세계보다 늘 보잘 것 없다. 그렇다고 한다면 세계를 여행한들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종착지에 도달해선 더이상 여정은 없다. 맛집도 두 번 가면 맛 없다. 종착지의 역설과 맛집이론. 의미는 과정에 있지만 우리는 두번째에선 그 첫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신대륙을 발견해야만 하는 비극적인 범선위에서 언제 바닥날 지 모르는 식량과 식수를 절약하며 근근히 살아나갈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이런 회의론에 무감각한 사람이라면 응당 멋들어진 말로 변명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고뇌는 이런 것이다. 나는 여행자다. 바람이 나를 부른다. 넘실대는 파도가 내 마음을 출렁이고, 이국적인 향기가 나의 오감을 자극한다. 나는 이미 돛을 내렸고 바람이 이끄는 대로 나의 운명을 맡겼다. 하지만 이 여정이 끝난다면 나의 배는 어디로 가야만 하는가. 여행지 중 마음 맞는 곳에 뿌리내려 정착해야 하는 것인가?

오갈데 없는 늙은선장은 누구를 지휘해야 할까. 오로지 죽음만이 그 마지막 종착지다 라는 결론에 이르러선 인생은 애초에 죽음으로 가는 기나긴 항해였던 것인가. 애초에 출발하지 않았던 이는 등잔 밑에서 더 넒은 세상을 만끽했을 수도 있다. 막상 펼쳐진 지도 위 세상은 그리 넓지 않을지 모른다.

아는 것은 고통이다. 더 많이 앎은 더 많이 고통받음을 의미할 뿐이다. 애초에 몰랐다면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옛사람들은 평범함의 미덕을 찬양했던 것일까. 평범함은 곧 비범함에 무지함을 뜻한다. 이렇게 또 한탄섞인 허무를 흘려보낸다. 물론 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건 내가 원하고 해야하는 것이다. 다만 그 끝에 어떤 새로움이 있을 것이란 걸 기대하지 않는다. 매 여행마다 번쩍이는 불빛으로 기억을 지우듯이 살아야겠다. 우표 속 세상은 그대로 냅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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