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론 1) 삶의 완결성
나는 종종, 아니 자주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계속 똑같은 물음, 똑같은 답변의 반복이다. 마음속에 드는 막연한 불안감과 두려움, 호기심 등에 오늘도 어김없이 왜 살아야 하는지 생각했다. 어차피 답도 똑같을 걸 알기에 이젠 질문 자체가 의미가 없었다. 그러니 오늘은 약간 달랐다. 나는 삶의 완결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질문이 권태로워질 때 더 발전된 새로운 형태의 질문이 찾아왔다. 그것도 어떠한 사인도, 징후도 없이 ‘문득’. 대부분의 헛되 보이는 일 → 아주 순간의 영감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삶을 완결성 있게 살아야 하나? 내 다음 질문이 이것이었다. 왜 살아야 하는지는 진작에 해결됐는데 다음 질문을 모르니 애매한 마음으로 구간반복을 한 것이다. 다음 해야 할 질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였다. 여태 어떻게를 안 넘어가고 왜에서만 머물러 있었기에 계속 똑같은 루트가 반복된 것이다. 전해지는 감정은 절대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남들이 들었을 땐 이전에 내가 했던 생각들이랑 무엇이 다른지 의문일 수도 있지만 내겐 분명히 큰 차이다.
사람들은 삶의 완결성을 꿈꾼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대학에 입학해야 하고, 열심히 스펙을 쌓아 좋은 직장에 취업하고, 열심히 자기개발 해 성공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삶이고 완결성과 짜임새 있는 삶이다. 인생에 더 완결성 있는 루트가 있고 불필요한 과정들은 제거해야 하며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움직여야 한다.
완결성이라는 것은 끝을 고려하는 것이다. 완결을 지으려면 끝이 있어야 한다. 마치 소설을 적을 때처럼 처음과 끝을 타임라인으로 정해놓고 구조에 맞는 완벽한 서사를 채워넣으려 한다. 그리고 그 서사가 완결될 때야 비로소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나는 종착지의 역설을 고안했다. 종착지에 도달해선 더이상 여정은 없다. 끝만 보고 간다면 성취감은 끝에 도달해서만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끝이 안보이는 여정이라면? 그럼 본인이 끝을 내려 할 것이다.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것이다. 각 단계마다 성취감을 느끼는 것도 물론 가능하다. 하지만 인간은 그리 강하지 않다. 초반에는 분명 그런 몰입으로 얻는 성취감을 느낄 것이고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면? 또 새로운 것을 찾고, 다시 몰입하고 노력한다. 그것이 끝나면? 또 새로운 걸 찾고, 다시 몰입하고 노력한다.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로 알려진 앤서니 보데인은 전국을 여행하며 일명 먹방을 찍었다. 자유롭게 여행하고, 취미를 즐기고, 인생을 인생답게 살았다. 사람들은 그가 신의 직업을 가졌다고 말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부러워했다. 4년 전 그는 자살했다. 그는 저 단계를 거쳤다.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걸 찾아야 했다. 새로움은 이전의 새로움만큼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 더이상 새로움은 새롭지 못했다. 그의 삶은 의미를 잃었다. 새로움이 없으니 완결 지을 수 없고, 완결에서 오는 성취도 없다.
소설을 집필할 때 짜임새와 완결성을 위해선 플롯이 필요하다. 구성이 명확해야 하고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구조로 쓰여져야 한다. 전체 서사에선 물론이고 각 장에서도 완결성 있는 플롯을 구상하고 모든 걸 계획하고 생각해야 한다.
세계적인 스릴러 소설작가 스티븐 킹은 대표적인 반플롯파 작가이다. 그는 플롯은 필요없다고 말한다. 현실 삶에선 플롯 같은 건 없다. 오로지 스토리만 존재한다. 그는 소설을 집필할 때 플롯을 세우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사람들은 억지로 인생에서 플롯을 만들려한다. 입시-취업-결혼-성공의 구조다. 하지만 그게 정작 본인의 삶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하고, 재밌지 않으면 도데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나는 인생의 플롯이 아닌 스토리에 집중하고 싶다. 플롯은 사건의 인과를 포함하는 개념이고, 스토리는 그저 사건을 나열한 것이다. ‘열심히 공부를 했으면 좋은 대학에 입학해야 한다.’ 혹은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선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가 플롯이라면 ‘열심히 공부했고, 좋은 대학에 입학했다.’가 스토리다. 플롯에선 열심히 공부했으면 좋은 대학에 입학해야 한다. 스토리에선 열심히 공부해도 좋은 대학에 입학하지 못 할수 있다. 열심히 공부를 안 해도 좋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
인생에 플롯은 없다. 인과를 가장한 우연만 존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