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h Rules Everything Around Me
“Cash Rules Everything Around Me”
이스트 코스트 전설적인 힙합 아티스트 우탱 클랜의 명반 C.R.E.A.M 가사의 일부다. 돈이 내 주위 모든 것을 지배한다. 돈이 세상을 지배한다. 사회는 돈의 원리로 움직인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돈을 거부하고 싶다면 자연인이 되어 짱돌찌개를 먹어라. 아니, 짱돌찌개를 끓이는 냄비도 돈으로 만들어졌다. 21세기에 살고있는 한 돈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돈은 무의지하다. 돈은 어떠한 선의지도, 악의지도 없다. 돈은 수단이자 곧 목적이다. 돈에게 지배된다는 말은 가치상대적이다. 조선초기엔 세종대왕에게 지배되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가 그 시기를 악한 것으로 규정하진 않는다. 그 당시는 왕정체제였고 왕이 군림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지금은 자본주의 체제이며 돈이 군림하는 것 역시 당연하다.
인터넷을 보면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돈이 돈을 번다’라는 명제를 증명하고자 한다면 인터넷을 보라. 내가 돈을 많이 벌었다는 사실이 더 많은 돈을 벌게 해준다. 온통 마케팅이다. 더이상 사기와 마케팅의 구분이 불분명하다. 이런 현상을 일찍이 깨닫고 행동으로 옮긴 이를 본 적이 있다. 그는 대출로 비싼 차와 인테리어 소품을 산 뒤 자신을 부자라 소개하며 부자되는 법에 대한 영상을 찍어 유명세를 탔다. 그 유명세를 이용해 실제로 큰 돈을 벌고 부자가 됐지만 사기 혐의로 체포됐다. 그가 어쩌면 5년만 뒤에 그랬다면 그의 행동은 용인됐을 수도 있다.
인터넷엔 온통 이 얘기 뿐이다. ‘누가 몇살에 얼마를 벌었다.’, ‘뭐를 하면 자면서도 월 1000 번다.’, ‘연봉 1억 올려준 비법’ 등. 물론 정말로 열심히 노력해 자수성가하여 자랑이든,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든, 마케팅을 위해서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아닌 사람들도 분명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팔리는 전자책 쓰는 법을 타이틀로 한 전자책이 정작 본인의 책은 못 팔고 있다. 이런 마케팅도 이제 끝물을 향해 달리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
돈을 벌기가 그렇게 쉬웠다면 왜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 할까? 인터넷에 나오는 것처럼 모두가 외제차를 타고, 연봉 1억은 가볍게 넘으며, 20대의 은퇴하는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면 왜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지? 왜냐하면 돈은 그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돈의 지배하에선 절대로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없다. 이건 단순한 제로섬 게임이다. 누군가가 얻는 것은 얻지 못하는 사람의 것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단지 그 액수가 개인에겐 1000원, 10000원이라 실감하지 못할뿐이다.
사람들은 부자들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에 대해 토로한다. 이러한 제로섬 게임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박탈감이 든다고 생각한다. 박탈감은 빼앗겼다는 기분이다. 누군가는 나랑 같은 나이의 혹은 나보다 어린 나이의 큰 돈을 벌고, 성공한다. 인터넷은 주로 성공을 강조해서 비추기에 이런 사례들은 더더욱 늘어난다. 저들이 번 돈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누군가의 것을 빼앗아 온 것이다. (돈이 무한히 생성되는 것은 아니므로) 그게 숨쉬듯 자연스럽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니, 그런 사람들을 보며 분노하고 허탈한 감정을 느낀다.
지하철 자리는 한정되어 있다. 지하철을 탔는데 이미 만석이다. 그러면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박탈감을 느끼는가? 저 사람이 내 자리를 뺏어갔다고 분노하는가? 아니다. 먼저 온 사람이 앉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그러려니 넘어갈 것이다. 돈도 그렇다. 빼앗긴다는 느낌만 드는 게 아니라 실제로 빼앗겼고 이건 자본주의 하에선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우린 분노하고 박탈감을 느낄 이유도, 필요도 없다.
라는 건 이론이다. 알지만 박탈감이 느껴지고 초조해지며, 불안해지는 건 감정이다. 인간이 언제 이성적으로만 사고했던가? 감정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이 인간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난 돈에 초연하고 싶은 사람이다. 돈과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요새 인터넷에는 돈에 대한 열망이 없고, 돈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을 마치 ‘거지의 마인드’를 가진 사람인 것처럼 묘사한다. 평생 발전이 없고, 현실에 안주하며,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는 생각이라며 돈을 사랑해야 하고, 어떻게 하면 돈을 벌지 고민해야 하고,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된 내 모습을 상상해야 한다. 아무리 돈에 초연하고 싶어도 이런 이야기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누누히 말하지만 나는 돈을 안 벌겠다는 게 아니다. 평생 가난하게 살고 싶은 것도 아니고, 살아가는데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안다. 그저 내 인생의 방향성에서 돈을 후순위로 놓고 싶을 뿐이다. 내가 즐기고 싶은 걸 즐기고, 하고 싶은 걸 할것이다. 그 과정에서 돈을 많이 벌면 좋고, 아니어도 상관없다. 혹자는 말한다. 돈이 있어야 하고 싶은 걸 한다고. 어느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200만원을 벌면서 500만원어치를 쓰고 싶으니 문제다. 500만원을 벌면서 1000만원어치를 쓰고 싶으니 문제다.
내가 얼마나 벌든 현재 상태에 불만족한다면 평생 불만족할 것이다. 1000만원을 벌면 2000만원을 벌고 싶고 10억 100억을 벌면 그떄와선 또 돈이 아닌 다른 것들을 원할 것이다. (물론 100%는 아니다. 걔중엔 1000만원을 벌면 만족하고 잘 살 사람도 있다.) 이미 많은 사례들이 그걸 알려준다.
돈을 목표로, 많은 돈을 원동력으로 노력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고, 그들을 존중한다. 하지만 난 아니다. 내게 중요한 건 지금이다. 지금은 내가 뭘 갖고 있고, 얼마나 갖고 있는 지와 무관하다. 지금 행복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내가 만약 로또에 당첨되어 부자가 되었다. 지금의 소박한 생활관 떨어져 돈을 펑펑쓰고 아끼지 않는다. 사람들은 내게 변했다 말한다. 나는 다시 모든 돈을 잃고 거지가 됐다. 이전에 씀씀이는 온데간데 없고 인색한 구두쇠가 됐다. 사람들은 내게 변했다 말한다.
난 변하지 않았다. 난 그냥 나다. 돈이 많으면 많이 쓰고, 적으면 적게 썼을 뿐이다. 난 그냥 지금에 충실했을 뿐이다. 생도떈 한달에 100만원을 받았다. 한달에 100만원을 썼다. 사람들은 내가 씀씀이가 너무 커져서 다시 줄이지 못할거라 얘기했다. 지금 한달의 30만원을 번다. 한달에 30만원을 쓴다. 물론 부모님 집에서 먹고자고 생활하느라 큰 돈이 필요하진 않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면 일을 더 많이 해 돈을 더 벌었겠지? 30만원만 써도 되니까 30만원으로 산다.
일을 하면 한달에 200을 벌 것이다. 그러면 200만원어치만 쓸것이다. 참으로 단순하지 않은가? 내가 200만원을 벌어 200만원어치를 쓰는게 평생 200만원만 벌 것이란 얘기가 되진 않는다. 열심히 하다보면 수입이 늘 수 있고, 수입이 늘면 또 그만큼 쓸 것이다. 다만 돈을 더 버는 것이 나의 제 1의 목표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 그것 뿐이다.
어느순간 “나는 맛있는 음식만 먹을거야”라고 말했을 때 그게 건강에 안 좋은 음식만 먹을 거라는 뜻은 아니다. 난 닭가슴살도 맛있고, 샐러드도 맛있다.
이것 역시 나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돈에 대한 생각이 나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원초적인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대신에 나를 불안하게 하는 요인들로부터 거리를 두기로 했다. 많은 정보가 나를 불안하게 하면 정보를 제한할 것이다.
남들이야 돈을 많이 벌든, 돈을 사랑하든, 부자를 꿈꾸든. 그건 나와 무관하다.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것이고, 보고 싶은 대로 볼 것이다. 그건 그들의 자유다. 하지만 내가 돈을 쫒는 삶을 살지 않겠다는 이유로 마치 나를 “거지의 마인드”라는 식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기분이 나쁘다. 나도 안다. 돈이 있어야 병도 고치고, 여행도 가고, 먹고 싶은 것도 먹겠지. 나도 다 알고, 나도 돈을 벌 것이고, 병도 고치고, 여행도 가고, 먹고 싶은 것도 먹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