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성 문제
동일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뚜렷하게 구분할 수 없는 연속성을 가진 것은 동일한가? 헤라클레이토스는 말했다. “어떤 사람이든 동일한 강에 두번 들어갈 수 없다.” 강은 계속 흐르기에 두번째 들어간 강은 처음 들어간 강과 다른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계속 변하기에 동일하지 않다. 이에 따르면 연속성을 가졌다 하여도 동일하다고 말할 수 없다. 보기에는 동일해 보여도 그 이면은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된다.
하지만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의 저서 [현대사회학] 에서는 “특정 변화가 일어난다고 해도 변화가 진행되는 동안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연속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이는 동일하다”고 말했다. 기든스의 말처럼 계속 변화하는 무언가를 동일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한다면 우리가 규정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적어도 우리는 그것을 “동일하다고” 간주한다.
형이하학적으로 보자면 우리는 현상과 사물에 대한 규정과 정의가 필요하다. 과연 이곳에서 형이상학적인 논의 (강물의 이면)이 어떤 지위를 갖는가? 근대적 형이상학의 거부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대두된 개념이다. 형태와 의미가 분리되어 의미가 실종되어 형태만 남았다면 더이상 의미에 대한 논의는 무의미해질 수 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도 하나의 사상일 뿐이다. 나는 형이상학적 논의가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연속성과 동일성에 대한 논의는 고대 그리스에서 치열하게 다뤄졌다. 어떤이는 세상 모든 것이 변한다고 하기도, 어떤이는 물, 불, 바람, 흙은 변하지 않는다하기도 하였다. 나는 연속성은 동일하지 않다고 본다. 모든 건 그때마다 변하며 우린 매 순간 동일하지 않다. 세상의 모든 것은 계속 변화한다. 하지만 동일한 표상을 가진다. 인간 세상에서 공유하기 위해 혹은 소통하기 위해 동일하지 않은 것을 동일한 껍데기로 포장한 것 뿐이다.
(이 논의가 내게 중요한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나에 대한 관념이 여기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나는 과거와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나와 다르며 오로지 현재의 나만 나라고 생각한다. 나의 많은 사상이 이 전제에서 비롯된 것인데 만약 연속적인 것이 동일하다고 인정해버린다면 기본 전제부터가 부정당하는 것이다. _
문제는 그렇다면 본질은 무엇인가? 변하지 않는 사물의 본질이란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만약 모든게 변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고 규정하는 것이 불가능한가? 혹은 어떤 것은 변하지만 어떤 것은 변하지 않는가?
나는 세상을 ‘지구형 모델’로 해석했다. 핵(본질) - 멘틀 (표상 이면에서 변하는 실체) - 표층 (표상). 기본적으로 본질은 존재한다. 본질을 이데아라 할수도, 정수, 진리라 표현할 수도 있겠다. 나를 예로 들자면 나라는 사람이 본질적으로 가진 핵심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본질이 변하는 가 불변하는 가에 대한 개념은 아직 애매하다. 본질은 변한다고 할 수도 변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다. 매 순간 변하진 않더라도 큰 지각변동에 의해 본질이 해체되고 재구성 된다면 본질은 변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본질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고 이해에 가까워질수도 있다.
멘틀에 해당하는 것은 표상 이면에 흐르는 것이다. 나는 이를 실체라 하겠다. 자아는 이 실체에 해당한다. 우리는 딱딱한 땅위에 살지만 사실 땅 아래는 줄곧 흐르고 있다. 1분전에 내가 서있던 멘틀과 지금 내가 서있는 멘틀의 위치는 다르다. 끊임없이 흐르고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을 잘게 쪼개 순간의 내가 서있는 위치를 관측할 수는 있겠지만 내 위치를 정의할 수는 없다. 양자역학에서 원자의 위치를 공식화할 수 없는 것과 동일하다. 멘틀은 불규칙적으로, 사방으로 흐르기 때문에 이를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관측에 따라 위치를 특정할 수는 있다.
표층은 표상이다. 형이하학적으로 우리는 사물과 현상을 정의하고 규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세계는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알 지 못하고,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으며,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다. 끊임없이 유동하는 멘틀위에서 집을 짓고 살 수 있겠는가? 짓자마자 무너질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발을 딛고 살 수 있는 땅이 있어야 한다. 당연하게도 표상도 변한다. 지진이 일어나 지각이 변동하지 않는가? 물체가 짓이겨져 전혀 알아볼 수 없는 다른 형체로 바뀌었다면 표상은 변했다 할 수 있다.
하지만 또다른 문제는 첫번째 강물과 두번째 강물이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라 말할 수 있는가? 이다. 다르다는 것이 본질은 같아도 실체가 다르다면 다른 것인가?
사물을 볼 때 우리는 표상만 보는 것도, 실체만 보는 것도, 본질만 보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관측하는 것은 표상, 실체, 본질의 총체이다. 따라서 다르다는 것은 이 3가지 중 하나만 달라져도 그 사물은 달라진 것이다. 본질>실체>표상이 아니라 본질=실체=표상의 지위를 갖는다. 따라서 우리는 그 물체의 표상이나, 경우에 따라선 본질을 이해할수도 있다. 하지만 실체는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사물과 현상의 연속성을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이 실체 때문이다. 표상과 본질은 변하기도 변하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실체는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이는 매순간 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