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
예수 비유로써 말했다. 그리고 말했다.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 아무리 현명한 말이라도 다른 사람에겐 형편없는 소리로 들릴 뿐이다. 보물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에겐 아무리 고귀한 보물을 갖다줘도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다.
나는 내 생각을 말했다. 나는 질문에 대답을 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너는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말만 하면서 설명해주지 않으려 해.” 그는 나를 마치 내가 알고있는 것을 알려주기 싫어하는 사람처럼 여겼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나는 알려주고 싶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는 말했다. 나는 예수가 아니라고. 예수는 예수기에 그렇게 말해도 사람들이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한 거라고. 그녀의 말이 맞다. 난 예수가 아니다. 하물며 예수가 말해도 그를 무시하고 듣지 않는다. 예수도 안티가 수십만이다. 나는 어떻겠는가? 자기와 동등하다고, 혹은 자기보다 낮다고 생각하는 자가 하는 설교가 어떻게 들리겠는가? 듣기 싫은 잔소리, 주제넘는 조언, 고리타분한 설교, 건방진 소리가 될 뿐이다. 나는 내가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내 말을 듣고 한번쯤은 생각해봤으면 할 뿐이다. 나는 뻔히 안다. 만약 내가 있는 그대로, 직접적으로 내 생각을 전달할 경우 그것이 어떻게 들릴지.
들으려 하면 들린다. 듣지 않으려 하면 안 들린다. 귀가 있다고 모두 듣는 건 아니다. 해와 달, 나그네 이야기가 우화가 아니라 “상대를 구슬리려면 스스로 필요에 의해 행동하게 해라”라는 짧은 문장이었다면 그걸 기억이나 하겠는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가 남들보다 우월하고, 똑똑하고, 현명하다를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대화의 방법에 대해서 말하고자 함도 아니다. 결국 사람은 자기가 듣고 싶은 대로 듣는 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귀가 있다면 들어라. 다만 그뿐이다.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 들으려 하지 않는 자는 평생 모른다. 귀가 있다면 들어라. 답은 본인이 찾아야 한다. 귀가 있다면 들어라. 들었으면 생각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