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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작성 2022.05.24분류 글주제 개인과 성장

기록이란건 참으로 묘하다. 마치 다른 세계의 나와 이야기하는 느낌이다. 기록을 남겼던 나는 온데간데 없고 지금의 내가 마주하는 그 기록은 전혀 새로운 무언가로 도달한다. ‘과거의 나’라는 것은 없다. 오직 개념만 존재한다.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내가 기억하는 (마구 조작되고 왜곡된) 내가 생각하는 나의 허상이다. 실재하는 건 오직 ‘현재의 나’뿐이다. 같은 맥락으로 ‘미래의 나’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직 현재의 나만 느낄 수 있으며 그렇기에 현재만 살 수 있다.

과거의 나, 그러니까 과거시점에서 ‘현재의 나’를 전자아, 미래시점에서 ‘현재의 나’를 후자아라고 부르겠다. 전자아는 외부에서 자극을 받아 내면화하는 어떠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생각을 만들었고, 그를 기록으로 남겼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전자아와는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되어버린 자아는 그 기록을 읽고 자아의 생각이라고 인식할 수 있을까? 아니다. 만약 전자아의 100가지 속성 중 단 한가지가 변화하고 99가지 속성이 동질하다고 하여도 자아는 발전한 것이 아니라 변한 것이다. 전자아와 자아는 근본적으로 다른 ‘내’가 된 것이다.

이런 맥 락에서 기록은 전자아가 건네는 편지와도 같다. 수많은 시점의 전자아들이 남겼던 지혜와 기술, 깨달음 등은 그게 어디든 (노션이든, 수첩이든, 아카식레코드이든) 저장되어 자아에게로 전달된다. 마치 책이 저자와 독자가 나누는 대화다와 일맥상통한다.

노인이 죽는다는 것은 하나의 도서관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나의 기록으로 도서관이 탄생한다. 자아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만들어진 것이다. 저자는 모두 이질적인 존재들이다. 도서관이 단 한명의 저자의 책으로 이루어졌다고 상상해보라. 얼마나 형편없는 도서관인가.

전자아, 자아, 후자아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기록이다. 문자, 음성, 영상, 그림, 심지어 물리적인 형태를 남기지 않는 경험을 기억에 기록하는 것도 포함하여 어떤 것이든 기록은 옳다. 좋은 도서관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얼마나 많은 양의 도서를 소유했는지이다. 어떤 종류의 기록이든 내가 남기는 모든 것들이 책으로 편찬되어 자아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꽂힌다. 물론 아직은 의정부 어린이도서관보다 못하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얼마나 많고, 다양하고, 놀라운 책들이 도서관에 꽂힐지 기대된다.

그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성과와 그 사람의 혁신성, 종합적 사고능력, 창의성 등 다양한 능력들이 이 도서관의 크기에 좌우된다. 나는 이 순간에도 후자아에게 건내 줄 책을 편찬하고 있다. 이 글을 마주할 후자아는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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