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mart Rabbit
이현승의 개인 홈페이지[자기소개]

4번째 살인 (3)

작성 2022.05.16분류 글주제 예술과 철학

생각해보면 첫번째 살인 때도 그랬다. 뒤통수에 날카로운 시선이 걸린 것처럼 아려왔었다. 나는 반투명의 방에서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은 채로 말린 생선처럼 널부러져 있었다. 축 벌린 입, 생기없는 눈, 딱딱하게 굳어버린 신체. 유일한 차이점은 나는 어둠속에서 건조됐다는 것이다. 그 방은 방음이 전혀 안됐다. 침대와 붙어있는 미닫이 문은 주방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수도꼭지가 고장난 싱크대가 있는 곳이었다. 똑.똑.똑 일정한 주파수에 맞춰서 낙하하는 물방을들은 자유를 찾자마자 웅덩이로 고였다. 똑. 똑. 똑. 물방울들이 떠드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소름끼쳐”, “더러워”, “꼴도 보기 싫어” 똑.똑.똑. 물방울이 고여있는 싱크대와 접촉하면서 생긴 공명음은 전혀 줄지않고 전해졌다. 아무리 귀를 막아도 그 파장은 막을수가 없었다. 똑.똑.똑. 내방은 썩은 생선과 물방울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검은 씨앗을 심은 곳엔 검은 식물만이 자라는 걸까. 나의 비늘을 뗴어가며 낮을 보내면 어김없이 밤이 왔다. 다시 물방울의 시간이다. 똑.똑.똑. 잠든다. 똑.똑.똑. 아이러니하게 나를 밖으로 내보낸게 물방울이다. 그날은 저 물방울 소리가 소름끼치게 싫었다. 세상은 내방을 제외하곤 밝은색이었다. 하늘에는 구름이 떠있었는데 그렇게 맑은 흰색은 처음봤다. “그냥 죽여버려” 깜짝놀라 고개를 내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봤다. 발아래에 물방울 하나 맺혀 있었다. 물방울이 나를 따라왔다. 이 녀석은 진정한 자유를 찾은 걸까.

“넌 잘못한 거 없어. 그 녀석만 죽이면 돼. 어렵지 않아. 내가 도와줄게.” 물방울은 분명 나를 향해 말을 건넸다. 이례적인 일이다. 물방울이란 종족들은 여태 한번도 내게 말을 건 적이 없다. 이 물방울은 뭔가 다르다. “오른팔로 그 녀석의 머리를 감싸고, 왼팔로는 턱을 감싸는 거야. 그리고 순식간에 팔을 당겨서 목을 비틀어버려.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곧 적응될거야. 사람이 얼마나 쉽게 죽는 지 알게되면 너도 즐기고 말걸?” 나는 허리를 숙여 물방울을 검지에 올려 놓았다. “그 녀석은 파렴치한 쓰레기야. 그 녀석만 네 손으로 처리한다면 모든 게 해결될거야. 나만 믿어. 다른 물방울들은 모두 바보야. 다들 그 녀석을 너라고 오해하고 있다고. 비슷하게 생기긴 했지만, 난 알아. 오늘 밤 그 녀석이 방으로 돌아오면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처리하라고. 넌 내게 아주 고마워하게 될 거야.”

나는 물방울의 조언을 들었다. 그 녀석이 돌아올 때까지 침대와 마주보고 있는 책상 밑에 숨었다. 그 녀석은 왠일인지 오늘따라 유독 지쳐보였다. 나에겐 더없이 큰 행운이다. 큰 노력없이 녀석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녀석은 씻지도 않고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마치 그게 자기 침대인양. ‘더러운 녀석..’ 나는 그 녀석이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 녀석이 잠드는 것은 그의 목을 꺾어 정의로운 응징을 선사한 것과 동일하게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녀석은 요상한 신음소리를 내며 침대를 뒹굴었다. 목이 부러진 모양이다. 갓잡은 생선처럼 팔딱거리며 죽어가는 녀석을 보니 두려움보다 설렘이 앞섰다. 내가 해냈다. 녀석을 죽였다. 그것도 아주 손쉽게. 내게 재능이 있음을 깨달았다.

2022년 6월 2일 - 4번째 살인 (4)


A Smart Rabbit|GitHub|LinkedIn|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