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범론(4): 미시론적 비범론 完
다수의 범인이 비범인을 만들고 비범인이 범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것이 이전까지의 골자다. 인간은 평등하지 않고, 범인과 비범인은 타고난다. 우리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엉뚱한데 끼이는 결합의 불일치를 탈피해야 한다. 비범인이론의 거시적인 측면은 이렇다. 하지만 미시적으로 발상을 전환해보자.
대부분 일개미들이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일개미들이 놀고있다. 97프로의 개미가 놀고, 3프로의 개미만 일한다. 이는 생존에 가장 적합한 방식이다. 창의성은 한가할 때 발생한다. 죽을만큼 열심히 일한다고 능률이 올라가고, 조직에 효율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성공하려면 놀 줄 알아야 한다. 각박한 삶 속에선 개방된 사고가 나올 수 없다. 이는 개인의 순간이 결합의 불일치를 겪고 있다는 말이다. 누구에게나 비범한 순간과 범한 순간이 있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범하게 보내야 한다. 아주 약간의 비범한 순간을 위해 필수적이다. 만약 모든 범인이 비범인처럼 행동한다면 사회가 유지될 수 있을까? 사회는 붕괴되고 역설적으로 누구도 비범인이 될 수 없다. 모든 순간을 비범하게 보내려는 자는 단 한순간도 비범한 순간을 보낼 수 없다. 범한 인프라가 기반이 되어야 비범한 순간이 빛을 본다.
놀랍게도 이 생각은 이미 이론적으로 적립되어 있다. 80대 20 법칙이라 불리는 파레토의 법칙은 “이탈리아 인구의 20%가 이탈리아 전체 부의 80%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에서 따왔다. 즉, 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원인의 20%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가리킨다. 일개미의 97대3의 법칙과 일맥상통한다. 위대한 행위나 발전, 진보, 유의미한 결과는 다수가 아니라 소수에서 나온다. 다수는 그 소수를 유지하기 위한 발판이다. 소수의 천재가 다수의 대중을 이끌어가는 현상은 이미 주위에 너무나 흔하지 않은가? 내가 엘리트 주의를 옹호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불행이 시작된다. 비범한 순간의 영역을 확대하려 하기 때문이다. 물론 비범인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범인보다 비범한 순간의 그릇이 절대적으로 크기에 비범인인 것이다. 하지만 비범인으로 태어날 확률과 그렇지 못할 확률이 3대 97이라고 가정한다면, 내가 범인인지 비범인인지 확인할 수 없는 무지의 베일에서 나를 비범인으로 간주하는 게 합리적일까, 범인으로 간주하는 게 합리적일까?
5장으로 구성했지만 4장을 마지막으로 마치는 비범론의 최종 요지는 우리가 범인인지 비범인인지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에 대한 집착이 나를 망친다. 나는 내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 나의 비범한 순간을 위해 범한 순간으로 대부분을 채우면 비범한 순간을 잡는 것. 아주 약간의 비범한 순간에 몰입하는 것. 범인으로 태어나 죽는 일생을 영원히 반복하더라도 꿋꿋이 의지로서 살아가는 것. 그간 모든 생각들이 말해주는 것들은 여기로 모인다. 미시적으로 바라보자. 내 삶을 전략적으로 경영하는 건 범한 순간과 비범한 순간을 구분하고 효율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