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째 살인(2)
날이 밝았다. 나도 모르게 잠들었나보다. 아무래도 살인이라는 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고된 일이니 어찌보면 피곤한 게 당연하다. 테이블에 엎드린 채로 잤다. 스르륵 눈을 뜨니 오른팔을 책상에 딱 붙이고 고개를 팔에 박은 모양이었다. 팔이 저릿저릿했다. 울긋불긋 청록색 핏줄들이 잔뜩 성난 채로 올라와있다. 몸속에 헤모글로빈들이 좁아진 혈관을 어떻게든 통과하려 애쓴 듯 하다. 눈 앞에는 어김없이 머리가 나를 보고 있다. ‘어제 머리를 어떻게 처리할 지 고민하다 잠들었구나.’ 온 몸이 뻐근하다. 특히 오른쪽 날개죽지에서 승모근을 타고 올라오는 근육이 심하게 뭉쳤다. 오른팔을 들려하니 삼두가 유리와 딱 붙어서 끈적하게 소리를 냈다. 얼마나 오래 이 자세로 있었는지 손 끝에 감각이 없다.
내가 자는 모습을 상상했다. 상체는 오른팔에 기댄 채로 왼쪽 허리가 지나치게 이완되었을 것이다. 몸을 따라가려는 허리와 의자에 바짝 붙으려는 엉덩이가 싸우다. 결국 허리가 이겼겠지. 왼쪽 엉덩이는 공중에 살짝 떠서 뒤척이다 애매한 안정감을 찾았음이 틀림없다. 나는 골반이 오른쪽으로 살짝 틀어졌다. 오늘로서 0.2도 정도 더 틀어졌을까? 삐딱한 자세가 점수를 차곡차곡 쌓아 불균형을 만들어냈다. 나이들어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던데, 내 몸을 보면 내 자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제자리에 있어야 할 골반은 조금씩 틀어져서 척추를 짓누른다. 왼 다리는 오른 다리보다 짧아지고 오른쪽 어깨는 봉긋 솟는다. 흉측한 곱추가 된 내 모습을 상상하다 소름끼쳐 그만두었다.
시계바늘이 느적느적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중이다. 정오는 해가 가장 높이 있을 때라고 하였나? 시계를 만든 사람은 반성해야 한다. 시간이 직관적으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후 2시부터 3시의 1시간과 새벽 2시부터 3시의 1시간이 정녕 똑같다고 생각한 걸까? 이상적인 시계의 모양은 원형이 아니라 타원형에 가까워야 할 거다. 정오의 해가 가장 높고 길테니 2차 곡선 형태에 가깝겠지. 2차 곡선이 위아래로 뒤집힌 시계를 생각했다. ‘잠깐 낮과 밤의 길이가 똑같았던가?’ 일출과 일몰의 시간은 분명 다르다. 정확하게 12시간씩 공정한 교대가 아니므로 시계는 기하하적인 모양이 될테다. ‘오전의 낮과 오후의 낮 중 어느 것이 더 길었지?’ 체감 상 오후다. 일출은 순식간에, 일몰은 느릿느릿 진행되니까. 어쩌겠는가. 난 과학자가 아니다. 내가 느끼는 대로 생각할 뿐이다. 결론적으로 시계는 높은 기울기를 갖고 상승하는 짧은 오전, 12시에 변곡점을 찍고, 완만하고 길게 내려오는 오후, 밤은.. 밤은 상관없다. 아무렇게나 있으라지. 밤은 어차피 잠드는 시간이니 시계를 볼 일도 없다. 이렇게 보니 내 살인이 밤에만 일어난 건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시계를 보는 시간이 아니니까.
제멋대로 뒤틀어진 시계를 생각하다 허기가 몰려왔다. 테이블 바로 뒤에 있는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를 열려면 일어나야 했다. 앉은 상태로는 어떤 인간도 냉장고를 열 수 없다. 그만큼 테이블과 냉장고는 꼭 붙어있다. 사람들은 냉장고만 신경쓴다. 테이블 따윈 아무래도 좋다. 그래서 난 테이블을 중앙에 두었다. ‘나라도 봐주지 않으면 너무 외롭잖아.’ 테이블은 가로로 긴 직사각형의 아이리시 테이블 모양이다. 그리 좋은 원목은 아닌 듯한게 가운데가 축 늘어져 곡선이다. 혼자 살면 주로 테이블 중앙에 앉게 된다. 누군가 있었다면 테이블도 휘진 않았을거다. 그에게도 테이블 자리를 양보해야하니 오히려 균형이 맞았겠지. 문득 다시 고개를 돌려 테이블 위 머리를 쳐다봤다. ‘이젠 머리에게 자를 양보해야 하려나?’ 머리도 배가 고픈지 궁금했다. 말을 걸어봤지만 묵묵부답이다. 그럼 그렇지. 머리가 말을 할 리가 있나.
간장계란밥 레시피. 계란, 간장, 참기름, 밥. 내가 제일 좋아하는 메뉴다. 냉장고에서 얼마나 있었는지 모를 계란 두개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혹시나 고기가 있나 냉장고를 뒤적거리던 중 테이블에 놓은 계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삭! 조용히 냉장고를 닫고 한숨을 크게 쉬었다. 남은 계란은 두개 뿐이었다. 여기엔 머리와 나, 딱딱한 바닥에 떨어져 노른자 마저 깨진 계란이 두 알이 전부다. 테이블에 놓여진 두루마리 휴지를 돌돌감아 주섬주섬 바닥을 치웠다. 끈적하게 늘어나는 계란은 손에 덕지덕지 달라 붙었다. 계란을 좀 더 소중히 다뤘어야 했다. 계란 없이 점심을 먹게 됐다. 계란 없는 간장계란밥이 완성됐다. 계란 없는 간장계란밥 레시피. 간장, 참기름, 밥. 크게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다. 당연하게도 맛이 없다. 간장계란밥을 그대로 싱크대에 놓았다. 아까 계란이 떨어진 자리에 끈적하게 흔적이 남았다.
“우히히히”
깜짝 놀라 테이블을 쳐다 봤다. 분명히 들었다. 머리가 웃었다. 내가 쳐다보니 마치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태연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다. ‘이 녀석 다 보고있던 건가? 여태까진 죽은 척 한거야? 내가 두개 남은 계란을 떨어뜨린게 우스워서 차마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진 걸까?’ 마음이 복잡하다. 어제 더 확실하게 끝냈어야 했다. 내 실수다. 이 녀석이 어디가서 입이라도 열면 난 끝장이다. 이 생활도 모두 까발려져 견딜 수 없는 치욕과 수치심의 나락으로 빠질 것이다. 숨막히는 공포가 몰려왔다. 안 된다. 아직 난 할 일이 많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머리에게 대화를 시도해봤지만 응답이 없다. 침착해야 한다. 아직 문제는 없다. 어차피 머리는 다리가 없다. 내가 옮기지 않으면 제 힘으론 아무것도 못 한다. 적어도 내가 이 방에서 지켜보고 있는 동안에는 활동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제 남은 계란도 없다. 머리를 두고 가거나, 들고 가야한다. 들고가는 건 당연히 말도 안된다. 잘려진 머리를 들고 다니는 사람을 정상으로 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난 즉시 중범죄자들이 가는 교도소 혹은 정신병원에 수감되겠지. 그렇다고 머리를 두고 가기도 불안하다. 나 없는 동안 저 녀석이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다시 테이블에 앉아 한참동안 머리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