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러고 싶지 않아
오늘은 머리가 조금 어지럽다. 모든 문제는 나도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아니 알더라도 종종 비겁해진다.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도 순간뿐이다. 막상 때가 오면 다시 다물어진다. 눈꺼풀의 힘은 빠지고, 혀는 무거워진다. 소리는 날카롭게 갈려나와 꽂힌다. 내일은 다를 수 있을까. 나에대한 기대가 점점 줄어든다. 난 진정으로 그러한 사람인가.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는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 마태복음 7장
난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나. 예수는 언제나 나에게 깨달음을 준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는 이 당연한 말이 오늘처럼 명확히 박힌 적이 없다. 난 그동안 누구를 심판하고 있었나. 남을 심판하며 내가 심판받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다름아닌 나였음을 알았다. 누구에게나 그런면은 있다. 너의 허물을 꼬집기 전에 나에게도 똑같은 허물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내가 심판 받지 않기 위해 심판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너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너의 모습은 곧 나의 모습이다. 너의 잘못이 곧 나의 잘못이다. 네가 가끔 길가에 쓰레기를 버리는 모습을 지적하기 전에 나도 길가에 종종 쓰레기를 버림을 알아라.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라. 곧 너에게 자비를 베풀어라. 위선자는 나였던 것인가. 난 절대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없다. 난 결코 내 눈에서 들보를 빼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난 나약한 인간이다. 난 겁쟁이다. 난 위선자다. 긍정이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덮어놓는 게 아니라 내가 그렇다는 걸 받아들이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나의 지난날의 과오가, 거리낌없이 남을 심판해왔던 나날들이 스쳐간다. 이젠 내가 심판 받을 차례인가보다. 천장은 어제보다 더 내려온다. 이제 곧 숨이 막힐 것 같다. 두 팔로 간신히 막고 있는데, 너를 안으려면 천장을 막는 팔을 내려야만 해.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아.” 난 모든 걸 망쳐야만 하는 사람인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모든 게 내 잘못인건가. 그래 나에게 돌을 던져라. 내 왼뺨을 때려라. 나는 기꺼이 오른뺨을 내어주겠다. 나는 포기하지 않겠다. 설령 그게 내 모든 걸 파괴하고, 나를 좀먹어 썩어들어가게 하는 원흉이라도 나는 어쩔 수 없다. 내 모든 걸 바꾸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조차 뭉개져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더라도 네가 던지는 돌을 맞겠다. 이것도 몰입이라면 몰입일까. 이젠 내가 왜 그래야 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 자리에 꼼짝없이 서 있는다. 이젠 피할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 지금처럼 영감이 넘치는 적이 없다. 이건 나의 숙명일까. 사실 이게 정녕 내가 원하는 삶일까. 자식은 부모를 답습한다. 나는 나를 옥죄는 목줄을 스스로 찾아갈 운명에 처하였던 것일까. 천장이 울렁거린다. 하늘이 원래 이렇게 낮았었나? 공기는 원래 이렇게 희박했었나? 고통은 지나가고, 아름다움은 남는다. 나는 고통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이젠 그게 없이는 안된다. 나는 어쩌면 나를 고통속에 몰아넣는 걸 즐기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상황이 나아지는 걸 견딜 수 없는 사람이다. “왜 나한테만 모질게 대하는 걸까?” 그건 네가 세상에게 모질 게 대하기 때문이다. 심판받기를 원한다. 내 안에 빛이 어둠이라면 나는 얼마나 어두운 걸까. 내 생애는 부끄러움이 많은가? 그렇지 않다. 나는 죄 많은 생애를 살았다. 부끄럽지 않다. 온통 내가 저지를 과오들로 범벅된 삶은 부끄러워할 수 없다. ‘네가 알고 있는 것, 보고 있는 것들 모두 환상이고 다 너의 상상이다. 너는 사실 조현병 환자이고, 여기는 정신병원이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실은 그러길 바라는 건가? 나도 날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하기에 내 정신은 너무나 맑다. 눈 앞에 있는 것들이 오히려 뚜렷하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코끼리는 안보인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회색 공사장만 있다. 공사는 언제쯤 끝날 지 모르겠다. 공사가 끝나도 우리가 우리일 수 있을까. 아직 완성되지 못한 건물은 점점 높게만 올라가고, 어느덧 끝이 보이지도 않는다. 애석하게도 인간은 그리 나약하진 않은가보다. 미칠 것 같아도 미치지 못한다. 죽을 것 같아도 죽지 않는다. 돈 때문에 죽는 사람은 있어도 사랑 때문에 죽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옳다. 그런데 자신의 죄 때문에 죽는 사람은? 나로인해 증명될까? 적어도 내가 죽기 전까지는 검증되지 않은 사실이겠다. 적어도 내가 책임질 무언가가 하나쯤은 있다는 의미이다. “자신의 죄는 그를 죽일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