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째 살인 (1)
오늘 그를 죽였다. 그의 두 눈이 보는 앞에서 그의 심장을 있는 힘껏 찔렀다. 그는 죽어도 싸다. 그는 더러운 혓바닥을 낼름 거리며 사방에 역겨운 침을 묻혀왔다. 그의 몸은 맥 없이 축 늘어져 ‘쿵’ 소리와 함께 무릎, 허리, 어깨, 머리 순으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싸늘해진 그 덩어리는 여느 때와 사뭇 달랐다. 후회는 없다. 그는 죽어야만 했다. 난 해야 할 일을 했다. 걸쭉한 피가 그의 심장에 박힌 칼 사이로 줄줄 흘러나와 내 손바닥을 적셨다. 왼손으로 칼을 뽑으니 야릇한 비린내와 함께 분수처럼 피가 솟았다. 온 방이 피로 범벅이 되었다.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본다. 내 얼굴도 시뻘개졌다. 실 핏줄이 지렁이처럼 꾸물거리는 충혈된 눈으로 나를 본다. 내가 죽인 건 누구지?
샤워를 하고 나오니 그의 머리가 바닥에 뒹굴고 있다. 방은 어느새 깨끗해졌는데 어쩐 일인지 왼쪽 손바닥에 묻은 피는 아무리 긁어도 지워지지 않는다. 머리를 주워 식탁 위에 올려놨다. 어쩐지 편안해 보이는 그의 두 눈은 지긋이 감겨있어 자는 건지, 죽은 건지 헷갈린다. 당장이라도 눈을 떠서 내게 비수를 꽂을 것처럼 머리는 나를 향했다. ‘이걸 어쩌지’ 속으로 생각했다. 팔짱을 낀 채로 의자에 기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냥 밖에다 던져버리면 분명 신고를 받고 경찰이 몰려올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에다 계속 두자니 뭔가 꺼림직하다. 더욱이 시간이 지난 시체는 부패에서 썩은내가 올라올 것이 분명하다.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있나 핸드폰을 열었다. 사실 내가 사람을 죽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몇 달전에도 누군가를 죽여서 이미 친구에게 도움을 받았다. 한 번은 도와주겠지만 두 번은 아니다. 내가 생각해도 그에게 다시 도움을 받지는 못할 것 같다. 아무도 없다.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이번엔 진짜 혼자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깨질 듯한 두통이 몰려와 오른손으로 이마를 움켜쥐었다. 눈가에 주름이 자글해진 채로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답답하다. 그의 머리를 빨리 처리하고 싶다. 혹시 그가 갑자기 깨어나진 않을까 싶어서 손가락을 들어 그의 눈을 찔러봤다. 푹. 1cm가량 들어간 뒤 느슨해진 탄성으로 천천히 돌아왔다. 다행히 그의 눈은 미동도 없다.
언제까지 사람을 죽여야 할까. 그때 전화가 울렸다. J다. 그녀는 내게 살인을 의뢰한 사람이다. 나는 그녀와 전속 계약을 맺은 지 몇 달 되지 않았다. 아직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어서인지 서로에게 해가 될 수 있는 말은 최대한 자제한다. 절대 그녀와의 대화에서 사람을 죽인다는 내용을 말하지 못한다. 혹여나 누군가가 녹음을 한 뒤 배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을 죽인 건 그녀 때문이지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손에 피를 묻힌 건 나고, 그녀는 깨끗하다. 그녀는 자신이 살인을 의뢰했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듯하다. 마치 자신은 아무것도 의뢰하지 않은 것처럼, 내가 사람을 죽인 다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나를 대한다.
J와 짤막한 통화를 마치고 다시 혼자가 됐다. 아니 둘인가? 아직 머리가 남았다. 문득 내가 처음 사람을 죽인게 언제인지 생각했다. 14살? 15살? 아득하다. 내 첫 살인은 꽤나 암울했다. 사방이 반 투명으로 된 방에서, 내가 뭘 하는 지 다 보이는 곳에서 일을 행해야 했다. 첫 살인치곤 상당히 난이도가 있었지만 난 깔끔하게 잘 해냈다. 아무래도 타고난 듯 했다. 그 역시 죽을만했다. 그는 파렴치한 사람이었다. 내 입으로 꺼내기도 싫은 역겨운 사람이다. 난 그를 증오한다. 그가 아니었다면 내가 살인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때까진 이게 내 업이 될지 몰랐다. 그 뒤로 한참을 앓았다. 몇 년 동안 골방에서 피 냄새를 지우려 애썼다. 하지만 냄새라는 게 내 DNA에 각인이 된 것처럼 잊을만하면 스멀스멀 올라온다. 후각이 둔한 대부분의 사람들을 못 맡겠지만 어떤 이들은 분명 알 것이다. 한 번 맡으면 잊을 수 없는 진한 피의 냄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