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mart Rabbit
이현승의 개인 홈페이지[자기소개]

비범론(3) : 범인과 비범인 이론

작성 2022.05.02분류 글주제 사회와 시장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모든 생각이 동등하게 존중받아선 안되며, 어떤 생각은 다른 생각보다 우위에 있다. 어떤 인간은 다른 인간보다 탁월하다. 인간이 갖는 유일한 동질성은 그들이 동등하게 자유롭다는 것뿐이다. 다른 인간보다 탁월한 인간을 영웅이라 정의했었다. 하지만 영웅은 그 단어가 같은 감정적 한계로 쉽게 오해를 불러온다. 영웅은 언제나 위대하며, 선하고, 존경받아 마땅하다는 무의식적 감정이 불가피하게 개입된다. 따라서 앞으로 이들을 비범인이라 칭하겠다.

사람은 범인과 비범인으로 나뉜다. 비범인은 범인보다 고귀한 존재가 아니다. 그들의 자유도는 동일하다. 그들의 역할과 능력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A가 B보다 수학을 잘한다고 A가 B보다 본질적으로 중요하고 고귀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중요도는 사회적 회소성과 필요성에 따라 임의로 설정된 것일 뿐이다. 그 사실을 바탕으로 범인과 비범인 분류 자체를 폄하하는 것을 부당하다.

범인은 톱니바퀴다. 사회라는 유기체를 이루는 수많은 톱니바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돌아가야 한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개인들이 모여 만들어진 사회는 단순히 그 합으로 치환되지 않는다. 사회는 하나의 생명체다. 사회는 마찬가지로 경향성을 가지며 중력을 지닌다. 하지만 부분과 전체는 상호의존적이다. 장기의 합이 내가 아닌 것처럼, 구성원의 합이 곧 사회는 아니지만, 장기가 없으면 내가 생존할 수 없듯, 구성원 없이 사회도 생존 불가능하다.

비범인은 톱니바퀴에 낄 수 없는 자들이다. 앞서 여러차례 설명했듯 비범인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태어난다. 날 때부터 그들은 비범인이 될 자질을 가진다. 하지만 모두가 비범인의 지위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타인, 환경, 상황에 종속되므로 비범인으로 태어났어도 범인의 톱니에 억지로 맞춰끼워져 평생을 살아갈 수도 있다. 비범인의 역할은 톱니에서 빠져나와 범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삶의 질이란 의식주를 포함하여 정신적, 영적인 영역을 포괄한다. 이 과정에서 종종 비범인은 소진된다. 많은 예술가들이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이유다.

범인과 비범인 역시 상호의존적이다. 범인은 비범인을 길러내고, 비범인은 범인을 위한 발전에 기여한다. 김슬빈의 표현을 빌리자면, 문명이란 게임에서 전설의 인물들을 바치면 몇 턴 동안 문명의 황금기가 도래해 생산성이 급증한다. 그들은 그 자체로는 생산도 전투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게임의 판도를 바꿀 핵심 캐릭터임은 분명하다. 인류가 게임을 클리어하는 데 비범인의 역할이 그것이다.

문제는 범인이 비범인이 되려 톱니 밖으로 나올 때, 비범인이 자신이 비범인인줄 모르고 범인들 사이에 끼워져 있을 때 발생한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 적응하지 못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더 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비범인이라 믿고 싶고, 비범인처럼 행동하고 싶지만 스스로 비범인이라는 것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어쩌면 비범인이 되고 싶은 범인인지도 모르겠다. 끝에 가서야 나는 범인이 었구나 깨닫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 비극이다.


A Smart Rabbit|GitHub|LinkedIn|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