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고다 언덕에서 왼 뺨을 대라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 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 마태복음 5장 39, 40절
개가 나를 향해 짖는다고 나 역시 네발로 기며 개를 향해 짖지 않는다. 가장 훌륭한 복수는 그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구절인 마태복음 5장의 말씀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개념이다. 나는 강요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사랑하고 싶지 않다면 너만 그렇게 하면 된다. 나에게 역시 강요하지 마라. 난 오른 뺨을 맞으면 분노를 삭히고, 온 정신을 집중하여 고개를 돌릴 것이다. 나는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억제하는 것도, 애써 좋은 사람인 척 하려는 것도, 위선자처럼 입에 발린 말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왜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려 할까. 그렇게 행동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해한다. 나도 절대 이상적으로만 행동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려는 의지조차 없다. 오히려 그들이 왜 그래야 하냐 묻고, 그렇게 행동하려 하는 사람을 멍청하다 생각한다. 나는 나만 잘하자고 생각했다. 남들이야 어떻게 하든 신경쓰고 나만 잘하면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런 배타성은 오히려 반감을 불러왔다. 생각을 바꿨다. “나라도 잘하자.” 세상 사람들이 모두 길가에 침을 뱉어도, 나라도 뱉지말자.
나는 변화란 작은 곳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믿는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바꿔야지는 통하지 않는다. 현재 위치에서도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그만한 자리에 서도 똑같이 행동하지 않는다. 사람은 순식간에 손바닥 뒤집듯이 변하지 않는다. 남들을 짓밟고 올라가려는 자는 이미 올라가서도 남들을 짓밟고 그 자리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탑다운의 변화를 아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무시한 채 평생 오지 않을 미래만 바라보며 말만 하는 사람들을 부정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무한한 지금만 존재할 뿐.
단지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이상적으로 생각할 뿐인데 수많은 장애물에 봉착한다. 사람들은 자신들과 같이 추잡해지기를 바라는 것 같다. 난 바보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보다 명쾌하게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사랑의 실천은 내적인 갈등 뿐만 아니라 외적인 방해를 맞이한다. 나에게 자유를 달라. 사랑할 자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