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질문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숙고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반대로 우리는 숙고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소크라테스야 말로 숙고의 장인이다. 그는 생각할 것이 있으면 가던 길에서 멈춰 서서 하루종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숙고라 함은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HOW다. 무엇을 숙고해야 하는 지, 소크라테스는 알려주지 않았다.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들, 삶, 인생, 행복, 사랑 등은 너무나 자명하다. 하지만 이런 주제들은 굉장히 추상적이고, 뻔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숙고해야 할 지 잘 모른다. 그래서 남들이 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면서 숙고한다. 그러나 정녕 그것만으로 우리는 충분히 숙고하는 것일까?
나는 숙고하는 사람들에겐 각자의 “인생 질문”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 질문은 각자가 살아온 환경, 타고난 성향 등에 따라 달라진다. 인생 질문은 자기 삶의 놓인 다양한 주제일 수 있고, 같은 주제 안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일 수도 있다. 진정으로 숙고하는 삶은 인생 질문에 대한 답을 정의하는 것이다. 나로 예를 들면 나는 비교적 최근까지 “왜 사는 가”가 인생 질문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고 나서까지 나는 내가 도대체 왜 사는 지, 다른 사람들은 뭐 때문에 사는 지 알고 싶었다. 삶에 대한 질문에 압도되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100%는 아니지만 만족할 만한 답을 정의했다.
하나의 질문이 해결되면 그와 이어지는 다음 질문이 생각나곤 한다. 요즘 나의 최대 화두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이다. 이 질문은 어떤 일을 하든 따라온다. 예전에는 항상 내가 이걸 왜 하는 지 궁금했다면 이제는 그런 생각을 잘 안 한다. 다만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생각하고, 그렇다면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생각한다.
질문이 바뀌자 삶을 대하는 태도도 바뀌었다. 좀 더 구체적이고, 실용적으로 사고하게 된 것이다. 전에는 “왜”라는 물음에 따라 꿈과 비전이 세워졌다. 하지만 그것들은 대체로 허무맹랑하고 허황되었다. 어떻게와 무엇을을 생각하자 그런 비전들이 뜬 구름 잡는 이야기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전략을 생각했다.
전략이라는 건 매우 단순하다. 끊임없이 파고 드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뭘 해야 돼?” “그 다음에는 뭘 해야 돼?” 같은 것이다. 계속해서 파고 들어서 지금 당장 목표를 위해 뭘 해야 하는 지 찾는 것이 관건이다. 내 목표는 매번 바뀐다. 정해진 게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렇게 바뀌는 목표가 어느순간 보니 하나의 지향점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의식하진 않았지만 마치 무언가가 나를 이끌 듯이 말이다. 결국 지금 내게 제일 중요한 건 “그래서 지금 내가 뭘 해야 하는 지”이다. 나는 이러한 인생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며 끊임없이 숙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