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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생

작성 2024.02.23분류 글주제 사회와 시장

요즘 시대는 단언코 자기개발의 시대다. 갑갑한 현실과 암울한 미래는 MZ세대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감정이다. 이들은 의지할 수 있는 낙관적이고 낭만적인 노년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 앞에 서있다. 이 세대가 제일 힘들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매 세대가 그러했듯 급격하게 변해온 한국 사회에서 이들의 심정을 이해하는 세대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 세대가 이렇게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기엔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것이다. 과격하고 고통스럽지만 다소 낭만적인 시대에 살았던 우리 부모 세대는 자식들에게 자신들이 겪은 불편을 넘겨주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덕분에 MZ는 편하고 안락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정작 이들이 자라 사회에 나오니 상황이 급변했다. 평생 나를 챙겨줄 것만 같던 사회가 냉혹하게 돌아선 것이다. 우리는 편하게 자랐지만 그 때문에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몸만 큰 어른이 되어 있었고, 이런 사회적 변화는 급작스러웠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MZ는 각자 살길을 모색했다. 그건 스스로 강해지는 것이다. 그 어떤 세대보다 자기 자신을 더 많이 돌보기 시작했다. 운동을 하고, 학사를 넘어,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유료 강의를 듣고, 학원에 다녔다. 건전한 취미도 2, 3개 씩 들고, 여러가지 사회적 활동에도 참여하며, 외국인들과 교류를 했고, 인터넷에서 스스로를 PR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이 과정에서 지쳐서 멈추거나, 탈락한 이들은 비관으로 자살을 하기도 했으며, SNS에 갇혀 무능력한 사람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사회적 대청소가 시작된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12 간지들의 레이스는 다시 열렸다. 최선을 다해 달리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러한 사회 현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단어가 바로 “갓생”이다. 갓생은 신이라는 뜻의 ‘갓(God)’과 인생의 ‘생(生)’을 합친 단어로 신과 같은 삶을 뜻하는데, ‘결과적으로 성공한 삶’이 아니라 ‘과정적으로 부지런히 사는 삶’을 말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촘촘한 계획표로 채우고, 이를 실천할 것을 선언하고, 실천한 뒤 인증을 한다. 갓생은 타인에 의해 주어진 숙제가 아니라 스스로의 시간에, 스스로 정한 규칙을 적용하고, 스스로 뿌듯해 하고, 스스로 인증하는 시간관리다.

코로나 이후 급격하게 진행된 개인화는 시간을 각자에게 맡기기 시작했다. 자신의 시간을 자기가 책임지고 관리하고, 운용해야 했다. 이젠 남는 시간에 할 일이 주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찾아서 해야 한다. 시간의 주도권을 조직이 아니라 개인이 쥐게 된 것이다.

개인이 시간을 관리하게 되면, 그것도 그 대상이 자신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효율적으로 시간을 분배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펑펑 낭비하든가, 시간을 가득 채워 한계까지 몰아세운다. 사회적 파이는 과거 세대보다 훨씬 줄어 결과적 성취로 얻을 수 있는 절대적인 양이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어떤 이들은 포기해버리고, 어떤 이들은 과잉 경쟁으로 뛰어든다.

모든 일엔 일장일단이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반드시 좋다, 나쁘다는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갓생 문화로 우리는 더 발전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사회를 더욱더 이분화하고, 개인에게 지나친 책임과 부담을 준다는 점에선 마냥 좋다고 볼 수도 없다.


미국인에게 갓생이라는 단어를 설명해주자 그가 말했다. “신이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아? 내가 신이라면 그냥 놀기만 할 것 같은데?” 그도 그럴 것이 신이라면 살아남기 위해 그렇게 아둥바둥 살아갈 필요가 없다. 하고 싶을 때만 하고, 놀고 싶을 땐 놀 것이다. 어찌보면 갓생은 “신의 삶”이 아니라 “신이 되기 위한 삶”인 것이다.

그러나 내가 줄곧 주장하는 바는 “지금 아니면 영영 못한다”는 마인드다. 과연 신이 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바친 세대가 진짜 “신”이 됐을 때 신의 지위를 누릴 수 있을까? 나는 반신반의하다. 노력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지 알아야 한다. 어느새 갓생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린 건 아닐까? 돈은 썼을 때 가치가 있는 것인데, 사람들은 종종 돈을 버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다. 마찬가지로 인생은 살았을 때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인생을 살지 못한다면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도 소위 말하는 “갓생”을 살고 싶긴 하다. 하지만 그것이 목적이 되고 싶진 않다. 나는 그런 삶 자체를 즐기는 삶을 살고 싶다. 즐기려면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시 한 번 중용이다. 내 시간을 흥청망청 쓰는 것도 아니고, 미래를 위해 전부를 희생하는 것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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