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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셰

작성 2023.12.05분류 글주제 예술과 철학

“이건 너무 클리셰야.”

클리셰라는 말은 흔히 부정적인 어감으로 사용된다. 클리셰란 자주 쓰이는 단어를 위해 그때그때 조판하는 수고를 덜도록 따로 조판 양식을 지정해 놓은 것에서 나왔다. 흔히 '진부한 표현', '상투적인 표현' 혹은 '특정 상태나 상황에서 대체로 일관되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경향'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하지만 근래 들어 나는 클리셰에 대해 새로운 의견을 갖기 시작했다.

“클리셰는 정말 안 좋은 것일까?”

아니 정확하게는 “우리가 클리셰 없이 살 수 있는가”이다. 클리셰는 일정한 확실성, 예측가능성, 규칙과 법칙을 의미한다. 인간은 불학실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확실성을 추구해왔다. 그래서 가족을 형성하고, 조직을 구성하며, 사회와 국가를 만들었다. 이 모든 게 인간이라는 종의 클리셰다. 어쩌면 클리셰라는 것이 너무 광범위하게 쓰여져서 그 의미가 오도된 것은 아닐까?

나는 일찍이 스티븐 킹의 “인생의 플롯은 없다.”라는 말에 깊은 인상을 받아 삶은 오직 스토리의 연속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느끼는 점은 인생에 어느정도 플롯이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게 인간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패턴은 나타난다. 우리는 다양하지만 전혀 예상 불가능할 정도로 다양하진 않다. 인간이라는 종에 묶여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플롯을 가진다. 삶은 보는 관점에 따라 플롯일 수도 스토리일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지나치게 단순화 하려고 했던 점이 플롯의 반감을 가지게 만든 것이다.

클리셰가 클리셰가 된 이유는 사람들이 그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즉, 그게 먹힌다는 뜻이다. 나는 대중성이 예술성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대중성을 거부하면서 모든 것에서 새로운 시도를 한다면 그 작품은 예술성에서 감점 요소가 있다. (물론 우리가 항상 만점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클리셰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내려놓고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창의적인 결과는 6가지 유형 안에서 이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듯이 대부분의 일들엔 패턴, 플롯, 클리셰가 있다.

라라랜드를 보았을 때 많은 클리셰들이 눈에 띄었다. 난 그것에 반감이 들었을까? 아니다. 참신하고 재밌는 영화라 생각했다. 클리셰 덩어리로 유명한 탑건2는? 오히려 가슴이 시원해졌다. 클리셰는 인간에게 꼭 필요한 도구이다. 도구이기에 어떻게 쓰이는 지가 중요하다. 나는 새로운 것을 찾겠다는 마음으로 은근히 클리셰는 진부하고, 저급하며, 피해야 하는 것이라 여겼다. 한 순간은 아니고 지금까지 여러 일을 겪으며 그런 나의 가치관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유명한 것은 유명한 이유가 있고, 사람들이 재밌어하는 것, 슬퍼하는 것, 중독되는 것, 효과가 있는 것 등등은 모두 제각기 이유가 있다. 그건 바로 적절한 클리셰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클리셰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사실 꿈이었다’ 같은 내용 측면에서 클리셰 (가장 눈에 띈다.), 전개 방식의 클리셰, 클리셰적인 이미지, 연출 같은 전달 방법의 클리셰, 클리셰적 교훈 등등 수없이 많다. 또 먼 과거의 클리셰였던 것이 현대에 재해석 됐을 때는 새로움을 주기도 하다. 또한 하나의 클리셰는 진부하지만, 모아 놓으면 참신할 수 있고, 클리셰가 너무 많으면 염증을 느끼지만 거대한 클리셰 하나에 만족할 수도 있듯이 조합도 중요하다.

지금 우리가 하려는 에디니스 프로젝트도 클리셰를 찾는 과정이다. 나는 현상들을 보고 규칙, 원리, 이론을 구상하는 것에 장점이 있다. 그리고 재밌기도 하다. 이것이 나라는 인간의 클리셰다. 현상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기만 해도 많은 것이 변화할 수 있다.

“클리셰는 좋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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