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에 관한 고찰
1999년 이스라엘의 한 연구팀은 창의성에 관해 뻔하지만 새로운 의견을 제시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톡톡 튀고, 기존의 것들과 전혀 다른 것들을 “창의적이다.” 혹은 그런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들을 “창의적이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익히 알다시피 실제로 창의성을 “느끼는” 것은 그런 것에서 촉발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연구팀은 약 200여개의 탁월하다고 인정받은 광고를 분석했고, 그 결과 약 80~90%에 해당하는 광고가 6가지 템플릿으로 분류되었다고 밝혔다. 이 연구의 의미는 창의적인 것의 원형이 있다는 뜻이다.
창의적인 것에 대해 여타 자료를 보고, 고심해본 나로서는 그리 새로운 발상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지식의 저주 때문에 나 스스로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일지 모르기에 조금 더 조사하고, 고민해보았다. 과연 창의적인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유니콘 같은 놈이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아는 것하고 이렇게 수차례 반복된 과학적 연구를 토대로 입증된 것 하고는 큰 차이가 있었다.
[”창의성은 좋지 못하고, 창의력은 좋다.”]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인지 의문이 들겠지만 끝까지 읽어보면 즉시 이해가 될 것이다. “창의력”은 주어진 문제 상황에 대해 다양하면서 새롭고 적절하고 가치 있는 것을 창출하는 능력이고, “창의성”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는 특성이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떠올리는 천재는 창의력이 아닌 창의성을 가진 경우가 많다. 창의성이란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는” 과 “특성”이다. 즉 창의성은 기존에 없던 발상을 생각하고 제시하는 사람으로 기존에 없다는 것은 평균에서 멀어져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거기에 더해 특성이란 능력과 달리 타고나 기질에 가깝다. 즉, 창의성을 가진 천재는 평균에서 멀리 떨어져 태어난 사람을 말한다.
창의성이 좋지 못하다 표현한 것은 다소 큰 비약이 있지만 나의 주관적인 가치관 측면에서 (대중성이 예술의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 등) 그렇다는 뜻이다. 불행히도 창의성을 가진 사람은 배척당하기 쉽다.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정신세계를 가졌거나,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필연적으로 소수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다수가 세운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원만한 관계를 맺기가 어렵다. 아이큐 200이 넘는 천재들이 학교에서 왕따 당하는 것을 생각해보자.
이것을 대중들의 시기, 질투 혹은 르상티망이라 볼 수도 있고, 창의성을 가진 천재들이 범인들이 정의한 “정신병”에 걸쳐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나는 그 두 가지 모두 굉장히 정상적인 행태로 보인다. 단지 인간에겐 기준이 필요하고, 그 기준은 불가피하게 다수에 의해 (혹은 집단적 소수) 세워졌기 때문에 우리가 앞선 행태들에 가치 판단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인간의 본성은 바꿀 수 없거나 혹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 그 본성이란 이런 것이다.
1) 인간은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고, 나와 다른 것을 배척한다.
2) 르네 지라르가 모방 이론에서 말했듯이 서로의 동질성이 강화되면 사회 유지를 위해 희생양을 만들어낸다.
이 밖에 여러 기제가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이 두 가지만으로도 왜 천재가 박제 되어 버리는지 설명할 수 있다.
창의성 인간은 남들과 다른 기준과 사고방식, 세계관을 가진다. 그는 남들과 다르게 태어났기 때문에 다수의 기준에 맞추거나, 그럼에도 자신만의 기준을 고수하거나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 만약 후자를 택했다면 그는 사람들의 미움을 사게 된다. 그건 ‘그가 잘났거나, 똑똑한 척해서’라기 보단 그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간극은 시간이 갈수록 커진다. ‘개인’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사회의 중력에 이끌려 동질화 된다. 나이가 들면 익숙한 사람, 예측 가능한 사람, 나와 비슷한 사람만 만나게 되는 이유다. 차별은 평등이 이뤄질수록 심각해진다. 모두가 같다면 아주 조그만 차이도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창의성 인간은 더욱 배척 받는다.
니체를 보자. 그의 책은 생전에 거들떠보지도 않는 휴지 조각이었다. 고흐는 어떤가? 소크라테스는 “소크라테스보다 똑똑한 사람은 없다.”라는 신탁을 받고 그것이 맞는 지 확인하기 위해 사람들을 들쑤시고 다녔다. 덕분에 아테네 주민들에게 미움을 받아 결국 사형에 처하고 말았다. 그는 충분히 사형을 면하도록 변론을 할 능력이 있었지만, 오히려 죽음을 택했다.
이 밖에도 역사에는 수많은 창의성 인간들이 존재했고, 그들이 박해 받고 미움 받은 것이 그리 놀라운 이야기는 아니다. 물론 개중에는 대중에게 인정받은 창의성 인간들도 있겠지만 대중의 심리는 결코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그저 시대적 행운의 결과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정말 다행인 것은 우리가 창의성 인간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왜냐면 우리는 창의성 인간, 그러니까 천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고심해야 할 것은 바로 “창의력”이다. 우리는 “창의력 인간”이 되어야 한다. 앞서 창의력을 창의성과 구분함으로써 창의성은 선천적 천재성, 창의력을 학습 가능한 능력으로 정의했다. 나는 작년부터 약 1년 간 창의력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많았는데, 그것을 바탕으로 고찰해본 창의력의 특징이란 다음과 같다.
[창의력의 특징]
- 창의력은 대중들이 감당 가능한 수준이어야 한다.
- 창의력은 배울 수 있다. (실험 결과 창의력 원형에 대해 사전에 배운 사람들은 약 50%이상 더 창의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 창의력은 다작의 결과다.
- 창의력은 적절한 제한이 있을 때 더 효과적이다.
- 창의력은 번뜩이는 영감에서 나와 예측 불가능한 것이라기 보단 예측 가능한 구조 속에 있다.
- 창의력은 감상을 통해 진부한 것을 구분하는 눈과 기존 원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의 혼란은 창의성과 창의력을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했기에 발생한다. 하지만 창의력은 창의성과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창의력은 익힐 수 있는 능력이다. 따라서 무엇이 창의력의 요건이며, 어떻게 창의력을 기를 수 있는 지에 대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