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가? 1. 증명의 요건
내가 읽고 이해한 바로 정리한 슬빈이가 쓴 [증명]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우리에겐 타인에게 나에 대해 간략히 설명할 수 있는 [증명서]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 편이 내가 호의나 기회 등을 얻는 데 유익하기 떄문이다.”
그에 대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알기엔 한정적 시간만이 주어져 있고,
그렇기에 많고 많은 잠재력 중 오직 증명되어 실현될 기회를 가진 잠재력만이 인정받는다.
먼저 밝힐 것은 해당 주장과 근거들이 상당히 타당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슬빈이의 가치관이 잘 담긴 글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처음부터 말했지만 나도 그 주장에 대해 강력히 동의한다. 내가 반복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나의 답변이 의견에 대한 반대로 받아들여져 혹여나 생길 오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이는 반대나 훈수, 조언 등의 의도가 아니며, 그저 슬빈이가 펼친 대화의 장을 확장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같은 능력을 가졌다면 이왕이면 증명된 사람을 뽑고 싶은 건 지극히 당연하다. 나라도 당연히 그럴 것이다. 더욱이 실제 세상은 스탯창을 열어 서로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게임과는 다르다. 우리는 현재 누가 더 능력이 있고, 누구에게 더 큰 잠재력이 있는지 결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현대 사회에서 증명서가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르상티망에 지배된 바보이거나 (여우와 신포도), 순전히 운으로 성공한 기만자 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 둘은 “왜 증명해야 하는 가”에 대한 합의를 이뤘다고 생각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다. 우리는 “무엇을 증명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가?” 이다. 많은 경우에 이 둘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을 수 있고, 이 경우에도 그런 듯 하다.
[무엇을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가?]
증명의 요건
유현준 교수는 말했다. “한국 사람들은 빌보드 차트에 든 걸 축하할게 아니라 빌보드 차트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타인이 만들어 놓은 기준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데 특화되어 있다. 그런 현상은 매뉴얼을 만들어 빠른 속도로 차트에 오르도록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있듯이 그 덕에 우리는 남이 만들어 놓은 기준으로만 사고하는 감옥에 갇혔다.
이 현상은 비단 사회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준에 따르는 사회에서 나고 자란 개인이 기준을 만드는 사람으로 자라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기준을 만드는 것이 항상 좋은 건 아니다. 기준을 따르는 사람 없이 만들기만 한다면 그 기준이 도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나 혼자 코딱지 파기 세계 챔피언 대회를 열고 1등을 해도 잠깐 기쁜 것 말고는 무의미할 것이다. 우리가 기준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기준을 따르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기준을 만드는 사회에서는 기준을 따르는 사람이 되는 법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증명서를 다 얻을 수 없고, 취사 선택 해야 한다. 어떤 기준은 따르고, 어떤 기준은 만들 필요가 있다. 그로써 우리는 과거의 내가 얻어온 증명서를 정리하고, 앞으로 얻어야 할 증명서를 계획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무엇이 증명서냐라는 논의가 선행되어야 하고, 그 답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권위
빌보드 차트 1위와 방구석 차트 1위의 무게감은 천지차이다. 해당 기준을 따르는 사람이 많을수록 권위는 증가한다.
취득 가능성
난이도가 너무 낮은 증명은 하나마나다. 그런 식이면 나는 10 무량대수 만큼의 증명서를 만들 수 있다. 따기 어려울 수록 증명서는 가치있다.
보상의 유무
증명서를 취득했을 때 얻는 직-간접적인 보상이 있다면 증명서의 가치는 올라간다. 상금 100만원 짜리 대회와 상금 10억짜리 대회는 다르다.
사회적 이미지
성공학 강의 팔이로 번 10억과 고전 문학으로 번 10억의 가치가 다르듯이, 이왕이면 사회적으로 고평가 받는 증명서가 좋다.
시간
토익의 만료 기간이 2년이듯 무형적인 증명서에도 분명 만료 기간이 있을 것이다. 좋은 고등학교를 나온 것이 나이 50에도 쓸모있을까? 이처럼 나이대에 적합한 증명서가 따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