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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작성 2023.10.30분류 글주제 예술과 철학

[진실과 거짓]

마히토는 일본어로 진실을 밝히는 자를 뜻한다. 마히토는 굳건한 심지를 가졌다 볼 수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론 스스로가 맞다고 생각하기에 독불장군이다. 진실은 주위 사람들과 쉽사리 어울리지 못한다. 세상은 그가 그러한 것처럼 그리 일관된 진실성을 갖고 있지 않다. 마히토는 학교 아이들과 싸우고는 집으로 가는 길에 돌멩이를 들어 자신의 머리를 찍는다. 진실은 스스로에게 상처입힌다. 울컥거리는 피가 머리에서 솟구쳐 그의 얼굴을 뒤덮고 평생 지워지지 않을 흉터가 자리잡는다.

그를 환상의 세계로 이끄는 왜가리는 늘 거짓만 말하는 새다. 왜가리는 전쟁 중에 불에 타 죽은 마히토의 엄마가 사실은 살아있다는 거짓말로 마히토를 탑 안으로 끌어들인다. 거짓말의 7번 깃털로 만든 화살은 되려 왜가리를 겨냥했고, 그의 부리가 뚫려 힘을 잃는다. 이를 계기로 여정 내내 거짓말은 마히토의 인도자가 된다. 왜가리는 마히토를 곤경에 처하기도 하지만 위기에서 여러 번 구해주기도 한다. 마히토는 진실과 거짓을 경험한다.

[현실과 가상]

마히토의 외가에는 특이한 일들이 종종 일어났다. 그 핏줄을 이어받은 마히토 역시 그랬다. 말하는 왜가리 하며, 분명 부서진 목검이 원상복구 되는 등. 어디서부터가 현실이고, 어디서부터가 가상인지 확실하지 않다. 그는 전쟁 한 복판에서 친엄마를 잃었고, 그의 아버지가 엄마의 여동생과 결혼해 임신 시키는 믿지 못할 일을 경험했다. 마히토는 현실과 가상을 경험한다.

[탄생과 죽음]

탑 안에 들어간 마히토는 여러 일을 겪는다. 새 생명으로 태어나기 전 상태인 와라와라들과 죽어있는 망자들, 그리고 살기 위해 와라와라를 먹는 팰리컨들. 이곳은 탄생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다른 와라와라가 살기 위해 어떤 와라와라는 불에 타 죽어야 했다. 팰리컨이 살아남기 위해 어떤 와라와라는 먹혀야 했다. 와라와라들을 배불려 날아가게 하기 위해 물고기들은 죽어야 했다. 무엇보다 마히토의 친엄마인 히미는 죽을 걸 알면서도 마히토를 낳기 위해 자신의 시간대로 되돌아갔다. 마히토는 탄생과 죽음을 목격하고 경험한다.

[선의와 악의]

마히토의 아버지는 전쟁 중에 군수공장을 운영하며 막대한 부를 쌓는다. 그는 카미카제 비행기의 부품을 만드는 일을 한다. 하지만 그는 어쩐지 순수하고 해맑다. 전쟁 통에 노동을 해야 하는 아이들 앞에서 비싼 차를 태워 학교로 데려다 주는 가 하면, 마히토의 머리가 찢어지자 학교에 기부를 해 해결하겠다고 한다. 죽은 아내의 동생과 결혼하여 마히토와 그녀가 사라지자 앞 뒤 가리지 않고 둘을 찾기 위해 뛰쳐나간다. 반면 마히토는 굉장히 예의바르게 행동하지만 새엄마와 세상 사람들에 대한 악의로 가득 차 있다. 심지어 그는 아이들과 싸우고는 돌로 자신의 머리를 찍어 흉터를 남겼다.

탑 속 세상의 창조자인 큰 할아버지는 죽고 죽이는 치열한 현실과 대비되는 가상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돌과 계약한다. 하지만 세상은 생명체와 같아서 의도치 않게 썩고, 곰팡이가 피곤 한다. 그의 세상은 위태로웠고, 그가 쌓아왔던 조각 탑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손자인 마히토가 자신의 세계를 이어갔으면 했다. 그래서 악의가 묻지 않은 조각을 가져와 마히토에게 건네며 너의 탑을 쌓으라 말했다. 하지만 마히토는 자신의 흉터를 만지며 이미 자신은 악의를 경험했기에 탑을 쌓을 수 없다 말한다. 그 순간 앵무새 대왕이 칼로 내리쳐 탑 속 세상은 붕괴되고 만다. 마히토는 선의와 악의를 경험한다.

[답습하지 마라]

현실로 돌아온 마히토는 이전 세상의 조각을 하나 가져와 기억을 잃지 않고 간직한다. 하지만 그는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세상을 만들지 않았다.

인생이라는 것은 원래 이해할 수 없고, 때론 징그럽고 혐오스러우며, 가끔은 울렁거리고 휘청거린다. 세상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들은 어떠한 설명도 없다. 그런 세상에게 마치 맡겨놓은 것처럼 “그래서 어떡하라는 거야? 뭐가 정답이야?”라며 불평하는 것 멍청한 짓이다. 답은 물어보는 게 아니라 스스로 정하는 것이다. 설령 누군가가 멋있고 번지르르한 세계를 만들어 보여줬다고 해서 꼭 그 뒤를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미야자키 하야오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면 정말로 그렇게 살 것인가?

나는 이 영화가 어렵다고 하는 게 이해가 안 됐다. 영화는 아주 직설적이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기존 지브리 영화처럼 빙빙 돌려 우화를 얘기해주듯 말하는 게 아니라, 징그럽고 잔인하리 만큼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준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참담했다. “노망난 영감”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개봉 후에 나온 평가였다. 사람들은 분노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지도 않고, 기괴하고 난해한 영화를 만들어 보여줬으니.

자신의 짧은 식견과 낮은 사고력에 화살을 창작자에게 돌렸다. 창작자는 도구가 아니다. 그 자체로 하나의 존재이며, 그는 그가 만들고 싶은 걸 만들었을 뿐이다. “하야오는 나의 지브리를 망쳐놨다.” 도대체 뭐가 나의 지브리인가? 그 지브리를 만든 게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다. 그건 너의 지브리도 아니고, 하야오가 지브리를 망치지도 않았다. 개인적으로 만난 적 있는 한 평론가는 이렇게 직설적인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문제인지, 아니면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자기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며 한탄했다.

사람들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말해준 바로 그 답 때문에 오히려 화가 났다. “답을 찾지 말고, 답을 구해라.”라는 말을 들으며 “그래서 답이 뭐야?”라고 묻고 있었다. 진정으로 묻고 싶다. 그대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가?

인생은 상대적이며 절대적으로 선한 것도, 절대적으로 악한 것도 없다. 진실과 거짓, 현실과 가상, 탄생과 죽음, 선의와 악의 등 모든 것들이 말이다. 그러니 정해진 단 하나의 바른 길 따위가 있을 리 없다.

그러니까 어떻게 살아야 하냐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묻지 마라.”

그리고 다시 한 번 묻는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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