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관
사람은 누구나 가치관을 갖고 살아간다. 믿음이 없는 인간은 없다. 인간은 어떤 상태에서든 믿음을 필요로 한다. 다만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거나 인지하지 못 할 뿐이다. 우리는 신념, 믿음, 가치관이란 말을 쉽게 내뱉지만 막상 “그것이 무엇이냐?” (”너의 가치관은 무엇이냐” 와 가치관이란 무엇이냐?”라는 중의적인 질문 모두에) 라는 질문에 답하기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아마도 사람들은 이것에 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거나, 생각은 했어도 언어로 표현하기 모호하거나, 오히려 너무 심오한 단계에 이르러 모순에 사로잡히거나 혹은 난잡해져 있는 등의 이유일 것이다.
(글의 주제와는 외람된 이야기지만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 말하고 싶다면 카테고리를 분류해 아주 작은 단위까지 세세히 내려가 설명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크든 작든 예술가라면 (’예술가란 무엇이냐’를 차치하고서) 자신만의 예술관 (예술에 대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예술관 역시 콕 집어 설명하기엔 다소 애매하고 지나치게 방대한 측면이 있지만 그중 대표적인 나의 예술관에 대해 설명해보자 한다.
- 단순함
비범한 것은 때론 지극히 단순한 것들이다. 최근 슬빈이가 주제로 삼았던 단순함과는 다른 개념일 수 있지만 나의 단순함은 내 인생의 철학의 큰 줄기인 가벼움과 닮아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지럽게 현학적이거나 우수에 젖어 지적인 날카로움을 자랑하는 게 아니라 우리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아주 단순하고 원초적인 것들에 대해서다. 이를테면 “우리는 서로를 조금 더 사랑해야 한다.”같은 말들.
- 의미와 깨달음
나는 분명히 말하고자 하는 게 있다. 누군가는 자신의 예술이 아무 의미도 없음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고,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다. 최근들어 나의 가장 큰 원동력이자 동기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라는 것을 인정했다. 나의 생각, 내 작품, 나의 삶이 사람들에게 인정받았으면 좋겠다. 나의 의미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깨달음을 주고 싶다. 하지만 내 생각에 애초에 예술이라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에 의존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독자들이 알아들은 것과 사뭇 다르더라도 괜찮다. 그것이 예술의 묘미다.
- 재미
예술은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어야 한다. 내가 아무리 좋은 의미를 닮고,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내도 재미가 없고 사람들이 읽지 않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재밌다는 것이 꼭 저급하고, 저질의 대중성을 따라야 함을 의미하진 않는다. 하지만 내가 만들 작품이 가져야 할 1순위 자질은 바로 재미다.
나는 오펜하이머를 아주 감명깊게 보았지만 일부 사람들은 혹평을 던졌다. 그 사람들은 확실히 이 영화에 재미를 느끼지 못 한 것 같다. 그는 일전부터 똑똑한 척 하려 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오펜하이머나 인터스텔라, 테넷 같은 영화는 사람들이 재미를 느끼기엔 너무 어려웠던 걸까? 사람들은 어려운 것들을 보면 불편함을 느낀다. 생각이 많아지고, 해석하고 이해해야 하며, 공부해야 하는 것을 피한다. 더 나아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선 비난을 퍼붓기도 한다. 지성은 무지성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당혹스럽고, 무지성 디스토피아가 연상되어 마음이 불편하다.
비록 지금 나는 쉬운 글, 단순한 글을 쓰고 싶어하며, 동화작가가 되려 하지만 내가 느끼는 재미와 사람들이 느끼는 재미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아리송하다. 작업을 하면서 “너무 어렵다” “복잡하다”라는 피드백을 들었다.
단지 알고 모르고가 아니다. 우리는 이해심이 결여되어있다. 나보다 모르는 이, 나보다 잘 아는 이에 대한 이해가 없다. 아니 사람들은 이해를 위한 노력의 필요성조차 반감을 갖는다. “내가 왜 그래야 해?” 전 글에서 내가 비판한 당위에 대한 질문이다. 나와 다른 이에 대한 이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게 갖는 관용이 절실히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