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삶에 대한 고찰 1) 왜 더 나은 삶인가
삶 (생존)이 생명체의 본능이라 생각했지만 이는 틀렸다. 엄밀히 말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생명체의 본능, 종착지라 표현해야할까? 기차는 종착지를 향해 달린다. 이는 그저 그렇게 설계되고 의도되었기 때문이다. 기차는 자신이 왜 종착지로 향해야 하는지 의심하지 않는다. 종착지로 향하는 것은 기차의 본능 (타고난 목적)이다. 이 과정에서 탈선하거나, 정지하거나, 충돌 혹은 역주행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종착지의 개념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생명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생명체에겐 사물과 달리 도구가 아닌 주체성이 있는 목적 자체의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신이 준 것인지, 스스로 깨우친 것인지, 우연의 결과인지는 모르겠다. 이들의 존재 목적은 바로 번식, 즉 DNA를 전파하는 것이다. 삶은 이를 위한 수단적 가치일 뿐이다. 번식, 특히 개별 개체의 DNA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를 남기기 위해선 경쟁에서 승리해야 하고, 더 나은 현재를 만드는 게 가장 유리하다. 그렇기에 생명체는 더 나은 삶을 꿈꾼다.
생명체의 본능은 DNA를 남기는 것이고 이를 위해 “더 나은 삶”이란 도구가 필요하다. 즉, 삶 자체는 목적도 본능도 아닌 것이다. 또한 DNA를 남기는 것은 죽음과 연계된다. 이는 생명력을 대가로 후세를 남기는 것이기에 DNA를 남기는 일은 죽음으로 향하는 길이라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죽음은 아주 자연적인 “정상상태”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외려 삶이라는 것이 “비정상상태”에 가깝다. 이 생각은 과거에 “우리가 무한한 없음에서 잠깐의 있음 후 다시 무한한 무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있음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닌가”라는 물음에서 태동했다. 삶은 본능을 위한 도구로써 선택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삶에선 내가 선택이 가능하다. (반대로 죽음을 선택 가능한가? 자살은 그저 삶을 끝낸다는 선택에 불과하다.) 비정상 상태는 선택가능성이 특징이다. 선택은 곧 자유, 자유는 곧 혼돈이다. 삶에는 자유가 있어 선택이 가능하고, 때문에 혼돈이며 필연적으로 고통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비정상상태 (혼돈, 삶)에서 정상상태 (질서, 죽음)으로 환원되는 과정 속에 존재한다.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비정상 상태의 특성에 있다. 비정상 상태는 선택가능성이다, 선택에는 선택지가 있어야 하며 선택지가 많을수록 유리하다. 무조건 많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아무리 선택지가 많아도 무엇이 더 좋은지 판단할 수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선택지는 무지도에 의해 결정된다. 내가 아는 것만 선택할 수 있고, 알아야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다.
무지가 없는 상태에서 100% 좋은 선택과 100% 나쁜 선택이 있다면 생명체는 당연히 전자를 고를 것이다. 무지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이 아닌 다른 것을 고르게 만든다. 인류는 집단지성을 이용해 더 나은 삶, 비정상 상태를 이롭게 유지하는 행위가 언제나 궁국적으로 이롭다는 것을 밝혀냈다. 때문에 조던 피터슨이 전통을 중요시 하는 것이다.
우리 존재의 목적 (DNA)를 달성하기 위해선 비정상상태를 유지하고 이롭게 (삶을 살며,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기) 만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따라서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인류의 최상의 선택이며 (더 나은 삶이 무엇인가 등은 “최선”의 영역이다. 하지만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 자체는 “최상”의 선택인 셈) 이는 당연히 따라야 할 문제이다. 즉, 더 나은 삶 자체는 의심할 여지없는 당위성을 가지지만 그 세부적으로는 인류의 지성으로 도달한 최선의 해답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더 많이 아는 것이 최선을 고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