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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쇼

작성 2022.12.01분류 글주제 예술과 철학

명작의 조건 중 하나는 다양한 해석이다. 누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보았는 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한다. 나는 지나치게 1차원적이고 평면적인 것보다는 다차원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예술을 선호한다. 나는 어제 트루먼쇼를 다시 보았고 예전에 볼 떄와는 전혀 다른 감각에 매료되었다. 트루먼쇼는 당연히 봤을 거라 생각하기에 줄거리는 생략하겠다. 나는 여기서 3가지를 느꼈다.

1 삶의 주인공

이 영화의 중심소재는 특별한 게 아니다. 알게 모르게 누구나 상상해본 적 있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자기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고,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조연, NPC다. 하지만 문제는 트루먼은 그것을 모른 채 평생을 살아왔다. 즉, 그는 자신이 이 TV 쇼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영화 초반 그는 권태감을 느낀다. 프로듀서가 짝지어준 메릴이 아니라 자신이 진정으로 첫눈에 반한 실비아를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 반복되는 삶에 지치고, 실비아가 간다고 했던 피지로 떠나고 싶지만 집을 떠나는 것을 극도로 무서워하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된 탓에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는 주인공이지만 마치 자신이 스스로의 삶의 조연이 된 것처럼 느낀다. 마치 현실의 우리들처럼.

삶의 조연이 된 것같다는 기분은 전혀 낯선 무언가가 아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자기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 일하며, 타인의 욕망에 의해 지배되는 우리들이 아주 쉽게 느낄 수 있는 공허함이다. 트루먼도 마찬가지다. 그는 삶의 진정한 (아주 진정한) 주인공이지만 자신이 주인공임을 모른채 살아간다.

삶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명품조연이 되어라”, “주인공이 되지 못하면 어떤가” 등등을 내게 논하지 말라. 그딴 거 없이, 그냥 정말로 주인공인데, 왜 조연이 되려 하는 것이지?

2 진심을 숨길 수 있는가

이 마을에서 트루먼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섭외된 연기자다. 그의 부모와 아내, 심지어 7살 때부터 동고동락을 함께한 절친마저 배우다. 나는 이 영화를 여자친구와 같이 봤는데 그녀는 앞뒤가 다른 사람을 싫어한다. 아니 무서워한다. 아마 이 상황은 그녀에게 최악의 악몽일 것이다.

“아무리 연기라도 저렇게 오래동안 보고, 함께하고, 같이 살았다면 감정이 생기지 않을까?” 내가 물었다. 그의 친구는 심지어 그와 7살 때부터 함께했다. ‘그 정도면 연기든, 아니든 그냥 친구 아닌가?’

“만약 나도 저렇게 속이고 연기하는 거라면 어떨 것 같아?” 내가 물었다.

그녀는 “아무리 속이려해도 진심은 드러나기 마련이니까, 정말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게 티가 나지 않을까?”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진심을 숨길 수 있을까? 그녀는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녀의 눈을 피했다. 그녀는 내가 진심이 아님을 알고 있을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

작든, 크든 우리는 모두 서로를 속이며 연기하고 있다. 도대체 이 중에 뭐가 진심이고, 뭐가 연기일까? 나 조차도 헷갈린다. 때떄론 진심이며, 때떄론 거짓이다. 정말로 진심은 전해지며, 진심은 숨길 수 없는걸까. 애초에 진심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자신의 진심이 무엇인지 알고 확신할 수 있을까? 생각한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격언이 떠올랐다. 내 진심은 무엇인가.

3 부모

이 영화의 제작자는 그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그를 지켜봐왔다. 그는 마치 신처럼 그를 쥐락펴락한다. 여자친구도 그를 보며 신을 떠올렸다. 하지만 나는 부모가 생각났다. 그는 그가 그의 탄생을 함께했다는 말을 강조하며 반복한다. 그리고 모니터 속 그를 쓰다듬으며 그가 마치 자신의 창조물, 혹은 자식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트루먼은 작품 후반에 세상을 의심하고 두려움을 떨쳐낸 채 바다로 나간다. 그는 물을 매우 무서워하지만 그것 역시 그가 벗어나지 못하도록 제작자에 의해 의도적으로 심어진 공포다. 트루먼은 배를 몰며 바다로 향했는데, 분노한 제작자가 그를 되돌리기 위해 파도를 만든다. 하지만 트루먼은 배에 몸을 묶은 채로 이게 전부냐며 도발한다. 화가난 제작자는 파도의 강도를 올렸다. 주변사람들은 트루먼이 익사할 거라며 만류했지만 제작자는 그 말을 무시한 채로 파도를 최대치로 올렸다.

거대한 파도가 몰려오고 배는 뒤집혔다. 트루먼은 정신을 잃었고, 이성을 찾은 제작자는 파도를 중단했다. 배는 복구된 채로 세상의 끝에 도달했고 트루먼은 출구를 찾았다. 제작자는 마이크로 그를 회유한다. “실제 세상은 자기가 만든 세상과 다르다. 여기서 너는 행복할 수 있다. 나가지 말아라.” 하지만 트루먼은 그 말을 듣고도 어둠속으로 걸어간다.

슬빈이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아주 잘 알 것이다. 그는 트루먼을 동화같은 세상 속에 가두고, 자신의 뜻대로 통제하고자 했다. 모든 게 그의 의도대로 되었으며 심지어 아내마저 트루먼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정해진 배역이 되도록 조작했다. 후에 트루먼이 진실을 알고 벗어나려 하자 분노한 그는 트루먼을 위협하며 그를 죽이려했다.

“그를 위한다는 이유로!!!!”

바다를 향한 두려움, 아늑한 공간을 벗어난다는 공포, 미지의 세상으로 나아갈 때의 불안을 극복하고 세상의 끝으로 가자. 계단을 오르고, 문을 열어라. 그리고 그의 음성은 무시하고 출구로 나가라. 그게 교훈이다.

4 잘 만든 작품

예전에는 트루먼쇼가 가볍고 유쾌해 좋았다. 하지만 다시보니 왜 트루먼쇼가 명작으로 분류되는지 여과없이 느낄 수 있었다. 범재는 말해주고, 천재는 보여준다. 이 영화는 단순하고 쉬운 소재로 수많은 철학을 내포하고 있다. 가히 천재적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영화가 끝나고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잘 만든 작품이 주는 희열. 내가 예술에 중독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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