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에 대한 자유
[죽음의 수용소에서]로 유명한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뒤 그간의 경험으로 생존과 자유가 억압받는 극한의 스테레스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을 발표햤다. 그의 정신 분석법은 자아와 방어기제를 다룬 프로이트, 열등감과 행동의 목적을 강조한 아들러와 견주는 제 3의 학파를 창시한 학자로 유명하다.
그가 수용소에서 보고 기록했던 것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거악에 굴하지 않은 동화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 극한의 상황에서 어떻게 붕괴되고 변화하며, 때로는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다룬다.
프랭클은 인간의 밑바닥이 드러나는 수용소에서 왜 누군가는 자신의 인격을 유지하고, 누군가는 무너지는 지를 설명하려 했다. 이러한 일은 인류의 역사에서 결코 드물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당시 누군가는 친일파가 되거나 일본인보다 잔혹한 사람이 되었고, 누군가는 신념과 정신을 지키며 독립운동을 했다. 심지어 지금도 이런 모습은 여실히 드러난다. 그것에 가장 유사한 예시가 바로 군대다.
군대는 인간의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잠재력을 끌어올리려 노력하고, 전혀 그렇지 않던 사람도 변해간다. 수용소, 군대, 일제강점기 등 모두가 똑같다. 그 정도만 다를 뿐 인간을 특정한 방향 (바람직하지 못한) 으로 유도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은 그것에 순응하거나, 굴복하거나, 끝내 저항하거나 하는 등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나는 이것을 보고 신념에 대해 생각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가진 신념을 지킬 수 있는지, 인간의 신념이 환경보다 강할 수 있는지, 대세를 거스르는 신념을 지켜야 하는지 등등. 왜냐면 나조차도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신념이라는 것이 인위적으로 주어진 환경과 통제에 굴복하는 것이라면 내 의지도 덩달아 나약해질 것만 같았다.
프랭클 박사는 모든 자유가 억압된 상황에서도 우리에겐 단 하나의 자유는 허락된다고 했다. 바로 [신념에 대한 자유]다. 이는 우리 헌법에서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유다. 종교의 자유가 그토록 중시되는 이유는 종교가 바로 이 신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신념은 환경을 극복하게 해준다. 신념은 태도를 만들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단단한 신념은 확고한 태도를 불러올 수 있다. 같은 상황이라도 태도에 따라 받아들이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내 삶의 3대 가치는 가벼움, 자유, 사랑이다. 자유가 내게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것들 때문이다. 나는 어릴 적 늘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나 스스로를 옥죄었다. 나는 나로인해 늘 억압되고 억눌려 있었고 자연스레 자유를 갈망했다.
자유는 내가 나다울 수 있는 이유다. 왜냐면 나는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할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1970년대에 태어났다면 무단횡단을 하지 않는 나를 이상하다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무단횡단 하지 않음으로써 환경과 상황에 저항할 수 있다. 내겐 자유가 있기에 모두가 안정된 직장과 수입을 찾을 때 나는 그것을 박차고 일어날 수 있다.
물론 내가 수용소에 갇히거나, 독립운동을 하거나, 전쟁 포로가 될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런 대단한 일이 아니어도 내 신념을 꺽으려 하는 것들은 무지하게 많다. 그것은 나에게서 비롯한 것일수도, 남이 내게 준 것일수도, 환경이 그렇게 만든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게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자유가 있는 한 나는 선택할 수 있다.
혹자들은 내가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별 것도 아닌 것에 무게감을 두고, 고집을 부린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다. 신념이 없는 이의 무미건조한 눈과 신념을 가진 이의 결의에 찬 눈을. 아마 내 표현이 다소 극단적이고, 비유적인 건 문학책과 영화를 많이 봤기 떄문일지도 모르겠다. 그 때문에 더 격하게 느끼고,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경험할 수 있지만 일상 속 소통에는 지장이 있을 때가 많다.
이런 생각들이 남들이 보기엔 똑같은 말만 반복하거나, 표현만 다르게 하는 [a→a] 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a→a`]이다. 내 이론을 정교화할 수 있는 사례, 작은 해답들, 사소한 질문들을 하나씩 발견하고 답을 구할 때마다 흥분되고 신난다. 옛날엔 이런 것들을 찾아내면 신나서 친구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과장을 보태서 어떤 이들은 내가 미쳤다고 느끼는 듯했다. 하지만 난 미치지 않았다. 그저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생동감을 부여하고 피노키오를 만든 제페토 할아버지처럼 내 생각들에 생명을 불어넣을 뿐이다.
진보는 a→b가 아니라 a→a`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