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인 절대성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 부자다 - 티베트 속담 中
처음 이 문장을 들었을 때는 “내가 얼마를 갖고 있던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동의는 했지만 그렇게 와닿는 문장은 아니었다. 만족한다면 현실에 안주하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충분하면 더 가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감사하되 만족하지 말자는 생각을 더 믿는다.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지만 더 나을 수 있다, 더 잘 할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러나 어제 인복에 대한 영상을 보고 글을 쓰면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 문장은 우리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지 교훈을 주는 이정표의 역할도 될 수 있지만 실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설명하는 문장이기도 했다.
그 사람이 부자인 이유는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왜냐면 어차피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가졌는지 모른다. 내가 충분히 가졌다고 하면 그런 줄 안다. 하지만 똑같이 100만원을 가졌어도 난 부자라고 말하면 옆 사람은 ‘저 사람은 분명 나보다 많이 가졌을거야’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도 믿고, 남도 믿으면 그냥 사실이다.
- 내겐 내 세상만 존재한다.
내가 없는 세상을 느낄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 내가 있으니 세상은 존재할 수 있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세상을 감각할 수 없고, 내가 죽고난 다음 세상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이 제각기 세상의 주인이고, 본인이 지각하는 세상만 진짜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 모든 건 믿음과 인식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이기에 자아를 배제한 채 사물을 볼 수 없다. 그게 무엇이든 투영된 것을 볼 뿐이다. “진짜 세상”의 유무는 제쳐놓고서도, 알고리즘을 거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세상을 바라볼 수는 없다. 사실이란 전문가의 의견일 뿐이다. 그리고 그 전문가란 우리가 전문가라고 인식한 사람의 불과하다.
- 인식은 대개 불충분한 정보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역시 인간이기에 그 인식은 불완전하다. 그래서 사람마다 다른 걸 보고, 느끼고, 경험한다. 결코 같을 수 없다. 완전한 정보에서 비롯한 거라면 모두 같은 것을 봐야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못하다. 인복의 예로 들면 실제로 내가 얼마나 인복이 있는지, 남들은 얼마나 인복이 있는지 같은 건 알 수 없다. 정보가 제한되었기 떄문이다.
믿음, 인식이라는 것도 이러한 불충분한 정보에서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 전문가라고 하니까 전문가라고 믿고 인식하다. 우주적 관점에서, 본질적으로, 그 사람이 얼마나 전문가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비교를 하려 한다. 중심이 자기가 아니라 타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상대성의 의미를 오해한다. 참된 상대성은 상대적인 절대성이 있다는 것이다. 모두에게 상대적으로 세상이 존재하고 각자에겐 그 세상이 정답이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상대성은 “저 세상이 맞으면 내 세상은 틀리다.”이다.
난 항상 인복이 많다고 느껴왔다. 그러던 중 나보다 훨씬 인복이 많은 사람을 만났다. “야 그건 인복 축에도 못 껴. 이 정도는 되야지” 그가 말했다. 그렇다면 이 순간부터 나는 인복이 적은 사람으로 바뀐 걸까?
사람들은 상관관계에서 인과관계를 찾으려하고, 독립시행에서 규칙성을 발견하려 한다. 저 세상과 내 세상엔 다른 물리법칙이 적용되는데 이 두개의 세상이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냥 나만 생각하면 된다. 내가 인복이 많다고 믿으면 많은 거고 적다고 믿으면 적은거다. 나는 저 세상에 대해 불충분한 정보밖에 없으니 알 수 없다. 그냥 내 세상만 이해하려 노력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