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고 느리게
알바를 갈 때 항상 자전거를 탄다. 그럴 땐 오디오 북처럼 들으면서 자전거타기를 즐기는데 오늘은 우연하게 뜬 독서에 관한 2011년 다큐멘터리를 들으면서 갔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여러 천재들의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의 공통점은 독서다.
사유리는 10살에 트루먼대학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하여 3대 음대 중 하나인 피바디음악원에 다니고 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녀는 트루먼대학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했다. 그녀는 한국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를 둔 혼혈이다. 그녀의 오빠 쇼는 200이 넘는 IQ로 10대에 이미 의대 졸업반이다.
사유리와 쇼 야노는 한 때 아인슈타인 남매로 유명했다. 그들의 어머니는 자녀들이 자연스럽게 책을 읽게 만들었고, 수시로 도서관에 다니며 책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으며, 자녀들이 싫어하는 책들도 읽을 수 있게끔 유도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잘못을 하면 핸드폰을 뺏고, 티비를 못 보게 하는 게 아니라 책을 못 읽게 했다.
천재들만 모이는 피바디 음악원에서 사유리는 천재라고 불리며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녀는 단언컨데 천재가 맞다. 엄청난 독서광이며 배움의 그릇이 남달랐다. 그녀는 배우는 것의 즐거움을 알고 있고 배우고 싶은 게 너무 많다고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다.
궤도는 과학계에는 천재들이 너무나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천재들이 그리 멀리 가지는 못 한다고 한다. 그들은 남들보다 일찍 도달했을 뿐이지 결국 30살에 가나 10살에 가나 마찬가지라고, 과학은 누가 더 빨리 가냐보다 누가 더 멀리가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남들보다 빠른 천재들은 또래 집단에서 어울리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지적 수준이 맞는 집단에서도 사회성이 떨어지기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천재들은 행복할까? 천재로 태어났다면 난 행복할까? 무슨 상황이든 마음만 먹으면 행복하다고 말한다면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애초에 마음먹을 수 있는 사람만 행복하다. 존재를 모르면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모든 건 순서와 단계가 있다. 그릇을 키우고 물을 부어야 한다. 물을 붓고 그릇을 키우면 작은 그릇만 차게 된다.
모든 천재들이 불행한 건 물론 아니다. 그런 생각은 오히려 지나친 피해의식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모든 졸부가 불행하고, 모든 현자가 가난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적절한 단계를 거치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행복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 조건에 의해 결정됨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유리와 쇼가 적절한 단계를 거쳤다면 설령 그들이 남들과 다른 환경에서 자랐더라도 행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이 쇼와 사유리처럼 책을 읽었으면 피바디 음악원에 가고 아이큐 200이 넘게 될까? 그것도 당연히 아니다. 마치 책만 읽으면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지능과 연관되는 학업수준의 약 80~90%는 유전이다. 유전에 대해 얕은 이해라도 있다면 알겠지만 부모가 천재여야 자식도 천재라는 말은 아니다. 유전이라는 말은 단지 부모 유전자 어딘가에 있던 천재 유전자를 타고 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라마누잔, 스티븐 내쉬 등 일부 불세출의 천재를 제외한 큰 성취를 이룬 사람들 다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들이 이룬 결과만으로도 그들이 평범하지 않다고 볼 수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 그들은 남들보다 뚜렷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아인슈타인은 대학에 떨어지고 취업도 실패했다.
이현세 화백은 천재를 만나거든 그냥 지나가게 두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 천재는 더 큰 벽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빨리 가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천천히 간다고 꼭 더 멀리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100%, 절대라는 건 없지만 선인들은 말하고 있지 않는가? 느린 길이 더 빠른 길이라고. 토끼와 거북이, 아기돼지 삼형제, 성경에 나온 집짓는 자 이야기 등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이야기한다. 누가 이 깨달음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몇 백년간 이어져온 현답이 단 몇 십년만에 180도 뒤집어졌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느리지만 ‘꾸준하다’가 중요한 것이지 자신이 느리다는 것만으로 꾸준하다고 착각하지 말자. 빠르든 느리든 꾸준하기만 하면 된다. 다만 빠를 때 꾸준하기 힘들다는 것을 이미 많은 지혜로운 자들은 배우고 경험했고 우리에게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