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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작성 2022.07.10분류 글주제 예술과 철학

(난 기본적으로 갈등론을 지지하는 쪽이다. 사회구조에 의한 억압과 맥락에 의한 통제, 지배를 위한 우민화, 의도적인 비합리성 등이 인간 사회의 체계를 유지하고 지배구조를 공고히 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기능론적인 시각도 어느정도 일리가 있다. 사회를 모순과 갈등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상호작용, 게슈탈트를 통한 문화 형성 등은 갈등론보단 기능론의 설명이 더 그럴싸하다. 그럼에도 내가 갈등론에 무게를 쏟는 이유는 나의 얄팍한 시선으로 보았을 때 사람들이 그닥 행복해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쓸모있음에 대해 생각했다. 쓸모있다는 건 어떤 것일까. 효율적이고 실용적인 것은 쓸모있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은 쓸모와 동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학창시절부터 철학을 좋아했다. 늘상 망상에 젖어 있었고, 하천을 산책하면서 철학에 대해 곰곰히 생각했었다. 나의 그런 시도들은 대게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왜 해?’라고 반문당했고, 그렇다면 도대체 쓸모있는 생각은 무엇인가 의문이 들었다.

철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라고 한다. 모든 학문이든 철학이 있다. 심지어 수학에도 수학철학이 있고, 0이란 무엇인가, 1+1은 왜 2인가 등에 대해 토론한다고 한다. 쓸모없는 쪽은 대게 인문학이다. 정말 말그대로 쓸데가 없기 때문이다. 개츠비의 순수성을 몰라도 취업한다. 콜필드의 방황을 공감하지 못 했어도 잘 살아간다. 이슈마엘이 바다로 나가는 이유 따윈 스펙과 전혀 상관없다.

나는 이것도 하나의 의식의 저지선이 아닐까 싶다. 실용성 추구. 생산성에 대한 집착. 일을 시작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걸 해서 어따쓰지?’, ‘이게 정말 도움이 되나?’ 시작은 망설여진다. 실용성에 대한 의심은 이 일을 세상에서 가장 하찮은 일로 여겨지게 만들었다. 다시 실용성 있는 걸 찾아 나선다. 사람들은 점점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눈 앞에 있는 문제를 실용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툴을 필요로 한다. 물고기 잡는 법이 아니라 물고리를 구걸한다.

형이상학적 망상에 빠져 현실을 등한시 하는 것은 물론 큰 문제다. 결국 우리는 물질로 이루어진 존재다. 눈 앞에 있는 배고픔을 해결하지 못하면 대양을 그리는 것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하지만 어떤 이들은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길 원한다.

사실 나또한 그렇다. 하지만 지금은 뭐가 중요한 건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나는 먹고 사는 문제보다 중요한 인생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현자는 눈 앞에 있는 것에 집중하고, 주어진 것에 만족을 얻으라고 말하기도 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공통점은 이것이다. “이로움”. 눈 앞에 있는 것에 몰입하든, 철학적 깨달음을 갈구하든, 어떤 방법이든 간에 나에게 이로운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

나는 당장에 쓸모보단 예기치 못한 행운에서 얻는 이득을 더 많이 경험했기 때문에 쓸모를 기준으로 행동하는 것에 거부감이 느껴진다. 더욱이 어릴 때부터 쓸모에 대한 강압 아닌 강압을 받아왔기 때문에 도대체 뭐가 쓸모란 말이냐는 식으로 반감이 든다. 차라리 무쓸모해 보이는 것에서 쓸모를 발견하는 것이 더 대단해 보인다. 해사를 졸업하고 소위가 된 나는 분명 쓸모있는 인간이었을 것이다. 해사를 퇴교하고 노션에 글을 적고 있는 나는 쓸모없는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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