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mart Rabbit
이현승의 개인 홈페이지[자기소개]

Bottom up과 Top Down

작성 2022.05.25분류 글주제 개인과 성장

숙고와 직관중 어느 것이 더 우위에 있을까? 인지심리학자 사이에서 꽤나 치열하게 논쟁이 되었던 문제다. 깊이 고민해서 정답을 찾아내는 것과 뛰어난 직관과 영감을 이용해 답을 도출하는 것.

제임스 서로위키는 200명에게 기린을 보여주고 몸무게를 맞춰보라 했다. 당연히 정확하게 맞춘 이들은 없고 200명이 각기 다른 오답을 내놓았는데 흥미로운 점은 200명의 오답의 평균이 정답과 근사했다는 점이다. 그는 200명의 200개의 오답은 한명의 200개의 오답과 같다고 말한다. 혼자서 200번의 오답을 내놓을 수 있는가? 쉽지 않다. 동일한 문제에 200번의 숙고를 할 정도로 끈기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집단지성에 대해 말한다. 1번의 오답을 제시하는 것은 쉽다. 200명이 한 번씩만 오답을 제시하면 정답을 찾아간다. 집단 지성은 숙고의 힘이다. 이 실험이 보여주는 것은 200명의 큰 고민없는 예상이 심사숙고해서 200번의 오답 후에 정답을 찾는 것과 똑같다는 것이다.

반면 게르트 기거랜처는 이에 반대한다. 그는 많은 사람을 거칠 수록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현명한 답에서 멀어질 수 있음을 주장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라는 옛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역설하다. 그는 똑똑한 소수의 직관적인 결정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면접관 5명이 합심해서 채용할 때 보다 면접관 1명의 직관적으로 선택한 인원이 더 큰 성과를 냈다는 것을 근거로 제시한다.

얼핏보면 둘 다 맞는 이야기이다. 컴퓨터는 직렬적으로 연결되면 가치가 없다. 병렬적으로 연결되었을 때 고차원적인 연산과정이 가능하고, 이것은 인간의 뇌가 연결되는 원리를 따른다. 병렬적으로 연결된 뇌는 1+1=2의 효과가 아니라 10, 20이 되는 승수효과가 발생한다. 인류문명이 이렇게 고도로 발전된 것은 문자의 발명으로 시대를 초월한 병렬적 연결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비약적으로 진보를 이룬 사람은 한, 두 명의 위인이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며, 시도하지 못하는 것을 시도한다. 현시대에는 일론 머스크가 대표적인 예시이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천재들의 직관이 세상을 바꿔왔다. 그들의 지식이 앞선 병렬적 연결의 산물이라고 치더라도 이 점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나는 이 담론을 보고 다작과 집중에 관해 생각했다. 미시적으로 보았을 때 집단지성은 다작, 직관은 집중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다작을 선호했다. 양치기의 예를 들며 하나의 큰 성공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시도에서 트는 소수의 싹이 성과를 만든다고 믿었다. 변화는 작은 데서 시작한다는 Bottom Up식 사고 방식이다. 이러한 Bottom UP은 Top Down을 가진 사람들과 많은 차이를 낳는다.

대표적인 Top Down 예찬론자는 나의 여자친구다. 그녀는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미래의 성공을 위해 지금을 희생할 수 있고, 변화는 큰 물결에서 시작한다고 믿는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바꾸겠다는 수많은 동기들이 생각났다. 그녀는 1~2권에 책을 집중해서 읽는 것이 훨씬 좋다고 말한다. 그녀는 하나를 할 때 제대로 하자는 마인드로 많은 성취를 이뤄냈다.

나는 선택과 집중보다 다작을 선호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현재밖에 없고 미래는 허상이다. 현재를 즐기지 못한다면 미래에도 즐기지 못할 것이다. 미래란 언제나 현재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바꾸겠다는 말은 지금의 무위에 대한 변명일 뿐이다. 현재 행동하지 않는 이가 높은 곳에서 행동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물론 불가능하진 않지만 가능성을 얘기하는 것이다.) 좋은 책 1~2권을 잘 선정해 집중하는 것도 좋지만 여러분야의 책을 많이 읽어서 그 지식들이 연계되는 종합적 사고과정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 (솔직히 그냥 책 읽는게 재밌고 빨리 다양한 주제에 대한 책을 보고 싶어서 여러 책을 읽으려 하는 것이 크다. 내게 책은 자기개발 수단이라기 보단 유희의 한 종류다.)하나를 할 때 제대로, 완벽하게 하려는 생각 때문에 성취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시도 자체가 큰 의미이며 수많은 시도들이 모여 큰 성과를 이룬다고 믿는다.

내가 Bottom Up을 믿는 이유는 나의 경험과 연관된다. 나의 작은 행동들이 주변사람들에게 하나둘씩 영향을 미쳐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는 것을 경험했다. 단적으로 예를들면 나는 세동이, 예찬이와 독서모임을 만들었고, 독서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6중대에 독서문화가 어느정도 자리잡고 책을 읽어야겠다는 인식이 생긴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믿는다. 우리의 독서모임을 보고 7중대와 1중대에도 똑같은 모임이 생겼다. 또 한가지 예로는 초창기 나는 해사 교정이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코로나로 외박이 제한되자 운동할 때를 제외하면 생도들은 모두 방밖으로 나오지 않고 핸드폰 게임을 하거나 잠을 잤다. 나는 그 당시 혼자서 해사의 이곳저곳을 산책하며 생도들도 이 아름다움을 느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기들에게 끊임없이 산책을 가자고 청했고 어떤 이들은 응하고 어떤 이들은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응했던 이들은 모두 만족하고 그들이 또 다른 이들에게 산책할 것을 청했다. 지금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해사 곳곳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초기 하루종일 거닐어도 사람한명 마주치기 힘들었던 모습과 상당히 다르다.

이밖에도 여러가지 경험을 했다. ‘독서문화와 산책문화를 모두 내가 만들어냈다.’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이건 Bottom Up에 대한 이야기다. 작은 물결이 큰 파도를 만들 수 있다. 나의 행동의 작은 영향력이 거치고 거쳐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심지어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미미한 행동들이 후에 나도 모르게 큰 결과로 돌아오는 일도 많다. 전혀 쓸모없을 것 같던 것들도 지나고보니 귀중한 경험이었다.

당연하게도 이 문제에는 정답이 없다. Bottom up과 Top Down 모두 의미가 있고 유용하다. 그러나 Top Down론자들이 Bottom Up을 무용한 것이라 본다는 생각은 내 피해의식인걸까? Top Down론자들 대부분은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무위론자라는 의견은 내 편견인걸까? 마치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 논쟁처럼 첨예하게 갈릴 문제다.

1~2권의 책을 집중해서 읽고, 정제된 생각을 기록하는 것은 당연히 좋고 유용하다. 하지만 이런 내 Bottom up 사고 방식과 상충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1~2권을 집중해서 읽으면서 동시에 여러권의 책을 읽는 건 불가능하다. Top Down에 주장도 굉장히 일리가 있고 Bottom Up도 큰 효용이 있다. 물론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여러책을 읽다 좋은 책을 마주하면 집중해서 여러번 읽고, 모든 생각들을 기록했다가 의미있는 생각들은 따로 분류하기 등등 Bottom UP과 Top Down의 조화를 통해 Middle UP-Down이 가능하다면?

중도는 이도저도 아닌 결말로 치달을 위험이 있지만 시도해볼만 하다.


A Smart Rabbit|GitHub|LinkedIn|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