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 개구리
내가 정말 많이 뒤쳐진 거라면 차라리 상대방의 위치를 모르는 게 낫다. 아는 것은 고통의 시작이다. 나의 무의식은 저도 모르게 상대와 나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비교하며 내가 얼마나 뒤에 있는 지 상기시킨다.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 안에 있을 때 더 행복했을까? 세상에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들보다 뛰어난 이들도 도처에 있다. 내가 여러 생각을 하고 다양한 것들을 깨닫게 되었을 때 이것도 모른 채 굴레 속에 사는 사람들이 안쓰러웠다. 하지만 나 역시 그보다 약간 더 큰 굴레에 있었을 뿐이라는 걸 깨닫자 억울함과 허탈함이 밀려왔다.
모르면 시도할 수조차 없었다. 이번에 서울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 모자는 1억 7천 만 원 가량 자가가 있었지만 금전적 문제로 고통받았다. 그들은 알 수 없었다. 그들의 상황을 더 낫게 만들고, 그들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누군가에겐 너무나도 당연하고 쉬워 보이는 것들을. 절망적이다. 나는 내가 뭘 모르는 지도 알 수 없고, 그렇기에 어떻게 해야 하는 지도 알지 못한다. 가슴이 매우 답답하다.
감정의 발단은 이러하다. 친구가 자신의 미래를 두가지로 그렸다. 하나는 대학원을 가 아는 교수님 밑에서 석사를 딴 뒤 샌프란시스코에 가기. 다른 하나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 공부한 뒤 창업하기. 그 얘기를 듣는 데, 지금 내가 하고있는 이런 공부가 되게 알량한 장난으로 보였다. 비단 이 친구가 아니라 친구보다 더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걸 상상했다. 누군가는 더 넓은 풀을 보고, 더 많은 걸 경험해 지금 내가 알지도, 가늠조차 못하는 방법과 수단들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어이없었다.
한국에서 아둥바둥 살려고 노력하는 것들을 누군가가 보며 상황을 발전시킬 너무나 명확하고, 확실한 해답이 있다면서 답답해 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나도 그 죽은 채로 발견된 그 모자와 다를 바 없었다. 어지럽다. 허무가 몰려온다. 나의 노력이 다른 이들에겐 소꿉장난과도 같은 유치한 일이 되어 버릴 수도 있겠다는 걸 실감했다.
자신이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알아버린 추락하는 천재는 사실 천재조차 아니었던 것이다. 천재성이 어쩌고, 꾸준함이 어쩌고. 그런 문제가 아니다. 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란 걸 알게 된 고대인들, 아무리 달려들어도 거역할 수 없는 힘을 지닌 스페인 탐험대를 보는 잉카문명, 방대하고 끝없는 우주에서 지구와 인간이 얼마나 먼지만도 못한 존재인지 알아버린 과학자들은 이런 감정이었을까.
완전히 새로운 감정이다. 해사에선 오히려 반대였다. 군 내 가장 엘리트 조직이었기에 다른 이들이 우리를 보고 그런 감정을 느꼈을 지 모르겠다. 대접 받다 사회로 나오면 적응을 못한다는 것이 이런 걸까? 넓은 세계에 대한민국, 넓은 대한민국에 서울, 넓은 서울에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얼마나 작고 보잘 것 없는 지..
하지만 비관으로 무너지고 싶진 않다. 방법을 찾고 싶다. 이 괴리를 해결할 나만의 논리를. 이런 감정을 경험한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이걸 어떻게 극복했을까? 차라리 모르고 싶다. 그러면 마음은 편할 테니. 하지만 이미 알아버린 이상 주저앉을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나만의 가치를 창출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