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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 연구소 5. 장기계획의 문제점

작성 2023.09.20분류 글주제 개인과 성장

나는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항상 계획을 세웠다. 여행을 갈 때는 분 단위로 어디에 가고 뭘 할지 정해놨으며, 공부를 할 땐 앞으로 내게 주어진 시간을 잘게 쪼갰다. 퇴교 후에는 하루 일과를 세세히 나누어 빈틈없이 채웠다. 특히 나는 장기적인 비전 없이 무언가를 시도한다는 사실이 극도로 불안했다. “이 다음에 뭘 해야 하지?” “이건 뭘 위해서 하는 거지?” 하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들었다. 그래서 1년 5년 10년 뒤의 계획까지 세우기 시작했다.

이런 계획적인 성격을 뭉뚱그려 J형이라고 표현한다면, J형은 단순히 계획을 세우는 타입이라고 정의해선 안 된다. J형은 통제를 원하는 성격이다. 상황이나 사물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 두는 것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유형이다. 계획을 세움으로써 내 시간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통제를 편안해 하는 것을 넘어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극도의 불안감을 느꼈다. 문제는 파킨슨 법칙에서도 설명했듯이 이런 “느낌”에 의존하는 행동들이 때로는 심각한 비효율을 낳기도 한다는 것이다. 내 마음이 편해지려 하는 행동들이 실은 과대한 낭비를 만들거나, 심지어는 더 큰 불안을 야기하는 요소가 되었다.

[문제점]

  1. 복잡성 증가

나는 계획을 연 단위, 월 단위, 주 단위, 일 단위로 세웠다. 그러나 모든 계획이 내 머리속에 도식으로 펼쳐져 있는 게 아니므로 사실상 계획표를 보지 않으면 어떤 계획이 있었는지 기억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연, 월, 주, 일의 계획이 조금씩 달라지거나, 비슷한 건데 다르게 표현하거나, 서로 어긋나는 계획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뭐를 어디에 적었는지 기억해 내기도 어려웠으며 일일이 계획들을 들여다 보고 피드백 하는 것도 힘들었다. 결과적으로 계획을 실행하는 것보다 계획을 세우는 행위 자체에 엄청난 노력과 시간, 정신적 자원이 투입됐다.

  1. 불안함 유발

나는 늘 미래의 계획 때문에 불안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항상 “계획대로 안 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맴돌았다. 하루는 앞으로의 계획 때문에 심각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었다. 나는 ‘내가 도대체 왜 이렇게 힘들어하지?’라고 생각했다.

나는 너무 많은 계획들을 촘촘하게 세워놨다. 더욱이 장기적인 계획들은 구체적인 계획이라기 보단 예상, 희망에 가까운 것들이라 실현되기 어려웠다. 그런 이상적인 계획들을 현실로 끌고와서 걱정하고 있는 셈이었다.

  1. 장기적 계획의 변동성

매 월 나는 월 단위 계획을 다시 세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단 한 번도 월 계획을 다 지켜본 적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지키려 하지도 않았다. 도대체 내가 왜 계획을 세워놨던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불안함을 극복하기 위해선 단기적인 목표에 집중해보란 말을 들었고, 장기적인 목표가 효용이 없는지 검색해봤다.

이미 많은 글에서 장기적인 목표의 한계를 지적했다. 상황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미래는 절대 예측할 수가 없다. 지금의 상황이 조금만 변해도 장기적인 계획은 무용지물이 된다. 그럴 때마다 계획을 다시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변하지 않을 계획을 세우거나, 세웠으면 끝까지 지키면 되지 않냐고 하지만 정형화된 과업이 아닌 이상 그런 형식을 유지하긴 매우 까다롭다.

나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놓고 지킨 적이 거의 없다. 말 그대로 계획을 세우는 일 자체가 나를 만족 시키기 때문에 계획을 세운 것이다. 더욱이 모든 주기의 계획을 다 세우는 건 굉장히 비효율적이다.

[해결방법]

  1. 단기적인 계획에 집중

장기적인 계획은 지금 내 상황에선 독이든 성배다. 물론 장기적인 비전이 안정감을 줄 수는 있다. 하지만 설령 내가 한 가지 미래를 정했다고 해서 그것대로만 살 수 있을까? 오늘이 어제와 다르고, 내일이 오늘과 다른데 비전을 유지할 수 있을까? 나는 그때 그때 하고 싶은 게 달라지고, 매일 조금씩 배우면서 안목이 넓어진다. 1년 전에 내가 세운 계획을 지금 보면 꽤나 허무맹랑하다. 후에 1년, 5년, 10년 뒤에도 그럴 것이다.

지금 일주일, 오늘 하루를 어떻게 하면 더 열심히 살 수 있을지만 고민해보자. 아직 내 수준에서 미래를 준비하기엔 역부족이다.

  1. 쓸모보단 몰입

마음이 불안할 땐 지금 눈 앞에 있는 것에만 집중하라는 말이 있다. 황농문 박사나 미하일 칙센하이트 교수가 그토록 주장하는 몰입이다. 장기적으로 관망하면 지금의 몰입이 깨지기 쉽다. 헛된 이상을 꿈꾸거나, 지금 하는 일의 쓸모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결국 지금의 나는 눈 앞에 있는 과제들을 해결하는 게 더 시급하다. 일단 물감을 짜 놓고 무엇을 그릴지 고민하는 편이 평생 고민만 하는 것보다 나은 방법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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